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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첫 사회생활이다 보니 깊이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근무 환경과 급여는 비록 적더라도 PD로 살아갈 수 있는 CBS를 선택하기로 결정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자신이 가라고 하시는 길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이끄셨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늘 그 너머에서 이미 일하고 계셨다.

기대 반 긴장 반으로 첫출근을 했다.


회사는 언론 통폐합이 풀린 지 얼마 안 된 시기여서 다소 경직된 분위여서 무겁게 느껴졌다.

방송사라면 바쁘고 활기 있게 돌아갈 거라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습 기간을 마치고 일을 할 때에도 무거운 회사 분위기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작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에 대하여 점차 불만이 쌓여 갔다.


그럴 때 한국일보사 계열사인 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인 대학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선배는 연예부 기자를 하다 보니 여러 인기 가수들도 만나고, 콘서트와 공연을 마음껏 보러 다닌다면서 흐믓해 하며 기자 일이 재미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 선배의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아, 그래. 이 길이야!'


마침 다음 해 89년 봄, 한국일보 제51기 기자 공채시험 공고가 났고, 나는 그 시험에 응시했다.

대중문화부 기자를 해보겠다는 마음에 혹시나하고 시험을 쳐 본 것이었다.


그런데 덜컥 합격해 버리고 말았다.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한 나는 휴가를 내어 한국일보에서 1주일 간 신입기자 교육도 받았다.


내심 마음에 걸리기도 했으나 교육을 마치고 나서 사표를 내리라고 생각했다.


한국일보사에서 출근 날짜를 받아놓고 CBS에 사표를 내기 위해 사장실을 찾아갔다.

당시 사장이었던 이재은 목사님은 내게 왜 회사를 떠나려고 하는지 진지하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제 꿈을 펼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의 솔직한 답변을 들은 사장님은 거듭 나를 설득하며, CBS를 위해 함께 일해 보자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나를 CBS로 부르셨는데, 내가 방황하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중보기도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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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기도와 거듭되는 권유에 나는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실력 있는 대단한 PD도 아니었고,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신입 사원일 뿐인데, 나를 믿고 진정성 있게 대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시는 분이 회사의 대표라면 그분과 함께 일해도 좋을 것 같았다.

만약 그때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회사를 옮겼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어리석고 연약하여 내 갈 길을 알지 못하던 나였기에 그때마다 그 걸음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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