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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600:1 이라니!'


1987년 가을, 졸업을 앞둔 해에 MBC 라디오 방송 PD 입사 시험을 보았다.

MBC 라디오 PD 시험 응시율은 매우 높았다.


방송사에 들어가는 것이 대학생들의 큰 꿈이던 시절이었다.


언론사 시험은 언론고시로 불렸으며, 대학교마다 고시연구회처럼 언론고시반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MBC에서 라디오 PD 2명을 뽑는데 1,300여명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처럼 높은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고 보니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되나 싶었다.


PD 외에는 다른 직업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PD가 안 된다면, 화려하고 멋지게 살아 보자.'


나는 PD가 될 생각을 접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연봉이 가장 높다는 모(某) 중소기업과, 화려한 호텔리어가 될수 있는 S 그룹의 입사 시험을 보았는데, 두 군데 모두 합격하였다.

둘 다 높은 연봉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보장하는 곳이었다.


기쁜마음으로 어디로 갈지 한동안 망설이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CBS 에서 공채로 PD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CBS는 1980년 군부 정권에 의해 언론 통패합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87년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언론 기능이 정상화되었고, 8년만에 첫 공채를 실시한 것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CBS에 대해 잘 몰랐다.


미국 선교사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방송이며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방송이라는 것, 그정도가 전부였다.


겉멋이 한창이었던 나는 CBS가 KBS나 MBC처럼 멋지고 화려한 주요 방송사도 아닌데 시험을 봐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PD가 되고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PD 공채에 응모했다.


그때만 해도 내 안에는 하나님의 일, 선교라는 생각보다 단지 'PD'에 더 마음이 쏠려 있었다.

4명을 뽑는데 600여명이 응시했을 정도이니 이 역시 만만찮은 경쟁률이었다.


나는 입사 시험 문제를 풀면서 신기하게도 아는 문제가 많이 나오는 것에 놀랐고,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다.


아는 문제 정도가 아니었다.

왠지 나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시려고 이렇게 문제를 내게 하셨나 할 정도로 시험을 잘 보았고,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막상 CBS에 합격하고 보니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다른 두 곳에 합격을 한 터였고, 그 두 곳은 PD가 아니었을 뿐이지 연봉이나 근무 환경에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바랐던 PD 자리를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세 곳의 입사시험을 붙고 나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CBS가 방송사라고 하지만 방송 환경이 제대로 갖춰진 것도 아니었고, 연봉도 다른 두곳에 비하면 턱없이 낮았다.


당시 CBS는 독립된 건물 없이 종로에 있는 기독교회관 9층과 10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기독교 회관 주변에서 데모가 잦았고, 데모하는 이들이 수시로 오가던 분주하고 정신없던 곳이었다.


시설 면에서도 AM라디오 하나있는, 방송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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