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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 채 분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자꾸 용서하라고 했지만, 내 안의 분노와 미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을 너무 쉽게 잘 믿은 탓이었고 신중하지 못한 탓이라며 자책했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에는 사기 금액이 엄청났다.


3억이라니, 그 큰돈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았다.


"주님, 그 돈 좀 찾게 해주세요. 제발."


사기당한 금액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떠한 대책도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속이고 돈을 갈취해 간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순간순간 극심한 분노가 찾아오곤 해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이제 막 창업한 죠이는 바람 앞에 등불같이 위태로웠으며, 어렵사리 마련한 마이너스 대출 통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깊은 절망속에 빠져 있던 나는 하늘을 향해 통장을 펴들면서 외쳤다.


"주님, 보십시오, 더 이상 은행에서 대출 받을 수도 없고 이제 저희는 쌀 한포대 살 돈도 없습니다.

이제 저희가족은 굶게 생겼습니다.

이대로 보고 계시겠습니까?"


분노를 넘어선 곳에 서러움이 있었는지 마구 울부짖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기서 목사님의 사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얼마 되지 않지만 보탬이 되었으면 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사모님이 조심스럽게 봉투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1천만 원이 담긴 봉투였다.


내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목사님 내외분은 사례비 이상 교회에 헌금하는 분들이었다.

자신들을 위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두분에게 저축한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무슨 돈이 있으셔서 제게 주십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우선 급한대로 사용하세요."


나는 돈의 출처를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은행에서 대출받은 1천만원이었다.

그분들이 자신의 소유를 위해 대출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서 대부분의 사례비를 교회에 헌금하며 살아온 두분이었으나, 나의 어려움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크신 사랑 앞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행이 사모님이 주신 돈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고, 식구들의 배를 굶기지 않을 수 있었다.

사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도의 숨이 내쉬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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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모님을 통해 내게 긍휼의 손길을 내미셨다.


불평불만과 절망이 가득한 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위해 일하셨던 하나님, 나는 주님의 일하심을 깨달을 때마다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곤 한다.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이 사라지고 평안이 가득하길 기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려면 내안의 분노가 사라져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사기 친 그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는 조금씩 사라졌지만 용서하는 마음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 형편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더 이상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 수 없었다.


주님만 신뢰하며 주님만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내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내 괴로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내게 큰 고난을 안겨준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용서하는 것이 주님께 빚진 자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더구나 내가 누군가를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내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 은혜 또한 부정하는 것이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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