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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리라. . . 나는 돌아가리라. . .” 


무슨 유행가 가사 같기도 하고 혹은 망명정부 구호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건 나의 개인적인 독백이었다. 


한국의 언론통폐합 때 미국으로 건너온 나는 아내에게 빈대처럼 붙어살면서 공부나 할 요량이었다.


 저널리즘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며 맘속에 품고 있던 학교는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교였다.


왜 하필 시라큐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었던 한국 CBS의 사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돌아가신 고 김관석 목사님이 시라큐스 언론학과 출신이다. 


목사로서 저널리즘을 공부하신 어른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 NCC를 통해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투신하셨던 한신 출신의 김관석 목사님에게 하필 감신출신인 내가 필이 꽂혀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난 그분처럼 미국가면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으로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미국에 왔건만 37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살다보니 시라큐스 대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노스웨스트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시카고로 건너올 때 목사 되라고 평생 날 위해 기도해 오신 어머니가 하염없이 공항 로비에서 울고 계셨다. 


어머니를 달래드리려고 “곧 올 거예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헤어진 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내가 미국에 온지 2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가실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라큐스고 저널리즘이고 모두 잊혀진 추억으로 접어둔 채 정신없이 미국을 살아오던 어느 날 나는 연합감리교 목사가 되었다. 


신학교를 졸업하며 어머니와 맺은 약속을 지켜드려야 훗날 그분을 만나면 덜 죄송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목사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교회도 개척했다. 


그런데 교회개척이란 그리 순탄한 길이 아니었음을 나는 왜 몰랐을까?


개척 10여년이 지나도 자립이 안되자 교인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다시 옛 생각이 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개척교회를 튀어 나와 시작한 것이 바로 크리스천 위클리. 


연합감리교 감독의 파송에 따른 기관목회자로 변신 한 것이다. 


시작할 당시의 이름은 크리스천 뉴스위크였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지가 그 이름 쓰지 말라고 법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겁에 질려 옛날 이름을 내리고 크리스천 위클리로 이름을 바꾼 지 이제 6년이 지났다. 


신문을 시작할 때도 “나는 돌아가리라, 잠시 후엔 개체교회로 돌아가리라!”가 나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기독언론이란게 돈 남는 장사도 아니고 사명감으로 밀어붙인다고는 해도 사실 그것도 거짓말이다. 


인건비는 뭘로 감당하고, 인쇄비와 우송료 없으면 모든 게 올 스톱이다. 

사명감이 인쇄비 한번 대주지 않고 인건비 보태라고 선심 쓰는 일도 없다.


그래도 죽어가는 모닥불에 다시 불을 붙이듯 어려울 때마다 우리 신문에 불을 지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은 나와 함께 이 시대를 동행하고 있는 이 땅의 한인 이민교회요, 사명감에 꽃을 달아주며 다시 용기 있게 일어서도록 손을 잡아 준 이민교회 목사님들이셨다.


되돌아보면 지난 15년 동안 미주웨슬리언연합회를 조직하고 그 첫 사업으로 세계웨슬리언지도자대회를 개최하여 지속시킨 것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현재 재정상의 문제로 중단된 상태이긴 하지만 2005년부터는 미주 웨슬리언 찬양제를 처음 시작하여 금년까지 11회 찬양제를 열어오고 있다. 


연합은 아름답지만 현실적으로는 연합이 안되는 게 연합사업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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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부터 시작한 유럽 종교개혁 발상지 학습여행은 우리 신문사의 ‘창작품’이다.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까지 모두 4회에 걸쳐서 이 학습여행을 주도해 온 것은

우리 신문을 성원해 오신 미주 한인교계에 돌려드리는 환불사례라고 생각하고 꾸준하게 발전시켜 갈 예정이다. 


내년엔 창간 15주년 특별기획으로 이스라엘 성지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나는 돌아가리라!” 로칼 처치를 떠나올 때 그렇게 다짐은 했건만 사실은 어디서 날 받아줄꼬? 

목사가 남아도는 마당에 나까지 기웃거리면 염치없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일년내내 새벽예배 인도할 정력도 없어졌고, 교회 안나오겠다고 ‘삐딱선’을 탄 교인들 총알같이 찾아다니며 비위맞춰 줄 목회적 열정이 갱신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이젠 돌아갈 곳도 없다. 


딱 한군데가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돌아가리라 주님의 나라로!”


지금껏 나를 성원해 오신 모든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그때까지 신문이나 잘 만들어야 하겠다. 


여러 모양으로 크리스천 위클리를 돕고 격려해 오신 미주 한인교계 여러 어른들과 독자여러분들께 창간 15주년 생일을 맞으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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