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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내가 흔쾌히 말하자, 그가 깜짝 놀랐다.


짧은 시간에 결정하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서 뜻밖이었을 것이다.

심삼종, 그는 그렇게 죠이의 첫 번째 크리스천 뮤지션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면 제대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할 수 있는 대로 재정을 준비하고 그래도 부족한 금액은 빌려서, 미국 최고의 음악 도시인 내슈빌에서 녹음을 진행하였다.


그의 탁월한 연주 실력에 최고급 레코딩을 입혀 크리스천 연주곡으로는 '최고'라고 할 만한 손색이 없는 앨범을 제작했다.


그렇게 심삼종의 첫 음반을 내고 두 번째 음반을 제작했는데,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웅장한 느낌의 첫 앨범에 비해, 두번째 음반은 스트링 편곡 중심의 보다 평안한 연주곡들이었다.


앨범을 제작한는 데는 적지 않은 재정이 들었으나 그 재정이 다시 채워지는 은혜를 경험했고, 다음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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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소포니스트 심삼종(왼쪽)과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오른쪽)



이후 클래식 앨범 2장을 더 해 총 4장의 앨범이 완성되었다.


클래식 앨범까지 제작한 데는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가 교회의 찬양사역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으로서 인정받는 크리스천 뮤지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후 그는 교회에서 연주하는 사역자이자 세상의 연주자로서 활동 무대를 넓혀 갔고,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으로 명성을 쌓아 가고 있다.


그가 교회와 사회에서 색소포니스트로 당당히 세워져 가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심삼종을 죠이의 첫 번째 아티스트로 맞아들이고, 그 다음 해에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을 두 번째 아티스트로 받아들였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중도장애인이었다.


20대에 건설사에 다니다가 크레인 사고가 나서 다리를 잃은 황영택을 만난 곳은, 죠이에서 기획한 장애인 음악회 자리에서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 장애인이 되자 자살을 기도하는 등 힘겨운 세월을 보내다가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서 몸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가 죠이 소속의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강연자이자 찬양사역자로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황영택'을 통해 교회와 세상 가운데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믿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에 마음이 움직여 함께 일하기로 하였다.


그의 앨범 역시 심삼종과 마찬가지로 국내 최고의 음악가들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의 앨범을 통해 대단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내 환경은 어려웠지만 그가 크리스천 아티스트로 세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역시 찬양 앨범과 클래식 앨범을 각각 한 장씩 제작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는지 앨범 제작 후에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장애인 창작진흥기금이 주어져서 재정의 어려움이 없도록 하셨다.


그는 앨범이 나오자마자 '희망의 메신저'라는 닉네임으로 교회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희망 전도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TV 방송에 출연하면서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죠이커뮤니케이션의 모토인 세상속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나를 향한 인도하심은 계속되었고, 내 존재의 의미, 그 답을 찾도록 안내하셨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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