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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로 이 땅에 와서 살면서 영어를 못해 버벅대다가 자존심을 구긴 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아니 자존심은 고사하고 절망감을 느끼고 사는 게 대부분의 우리네 영어사정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한글이 있다. 


한글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영어 때문에 꿀리고 눈물 나게 서러울 때도 우리 가슴에 다가와 그윽한 손길로 화를 달래주는 우리들의 모국어 한글. . . 


미국 사람들과 싸움이 붙었을 때 서툰 영어로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으니까 급한 대로 한국말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고 나니까 울화통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더라는 영웅담(?)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한글은 우리들에게 조국이고, 어머니이고 고향인 셈이다. 


객지 살면서 서러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고향이 그리울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고향이 되어 마음을 달래주는 한글덕분에 우리는 위로받고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난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만나는 한글간판을 보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반가움이 있다. 

아주 오래전 프놈펜에서 본 ‘한국식당’이란 간판을 보았을 때, 더블린에서 ‘한양식당’, 취리히에서 ‘아리랑 식당,’ 프라하에서 ‘엄마식당,’ 이스탄불에 있었던 한국식당 ‘비우’. . . 그런 한 식당에 가면 우리 동포들을 만날 수 있고 더듬거리는 현지어 대신 모국어를 주고받는 그 포근함과 편리함을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객지에서는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한글이건만 막상 조국에서는 늘 외국어에 밀리고 영어 때문에 천대를 받는 것이 한글의 현실처럼 보인다. 


세종대왕님에게 좀 미안하다.


우리가 잉크나 컴퓨터, 버스나 빌딩 같은 영어를 우리말에서 모두 추방하자는 건 억지로 봐야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런데 도가 지나친 점은 있다. 


방송이나 잡지 같은데 보면 미국 사는 나도 알아먹지 못할 외국어로 도배를 하고 있는 경우다. 

토크쇼, 앵커, 기상 캐스터, 셰프, 메이크업 같은 건 그렇다 쳐도 무슨 오픈 프라이이머리, 송 라이터, 크로스오버,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말들이 한글과 뒤섞여 그냥 마구잡이로 사용되어도 무방할까란 의문이 든다. 

일본어가 우리말에 끼어든 것은 일제 36년의 잔재이니 떨쳐버려야 된다고 배워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떨쳐버려도 아직 남아있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 언어상의 접목이란 관점에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우동→가락국수, 벤또→도시락, 빠다→버터, 쓰리→소매치기, 빤쓰→팬티, 쓰메키리→손톱깎이, 사시미→생선회로 바꿔 한글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권고하지만 우동이란 말을 일본말이라고 우리 입에서 걷어내기란 나부터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어를 쓰면 매국노, 영어반, 한글반을 섞어 쓰면 유식한 식자층으로 인식되던 때도 이제는 마감해야 될 때다.

외래어를 한글 맞춤법에 맞춰서 잘 정리하고 발표해 주는 것은 우리들의 조국 대한민국이 해줘야할 의무사항이다. 

우리는 모두 ‘짜장면’이란 말에 잘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무턱대고 자장면이 표준말이니 짜장면은 사용불가, 자장면이란 말 만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걸 누가 따르겠는가?  사실 2011년에 이르러 짜장면이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확정되었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짜장면은 오용이고 자장면이 표준이란 제한이 없어져 둘 다 표준이 된 셈이다.

헷갈리는 외래어 표기도 문제다. 


Sign은 싸인으로 표기해야 표준이지 왜 사인으로, 쌘드위치를 샌드위치, 썬글라스를 선글라스로, Song은 쏭이 아니고 송이 되어야 하는가? 


Sausage를 쏘세지가 아니라 왜 소시지로, Center를 쎈터가 아닌 센터가 표준어인가? 


더 있다. 센티멘털인가? 센티멘탈인가? 뮤지컬인가? 뮤지칼인가? 웨이터인가? 웨이타인가? 메시지인가? 멧세지인가? 따지자면 한이 없다.


미국 살면서 영어단어 한자라도 더 암기하는 게 남은 인생에 유익이지 그깟 쏘세지와 소시지 가운데 어느 것이 정확한 표기법인지를 따져서 뭘 하겠냐고 젖혀 둘 일은 아니다. 


아무리 달러로 월급 받고 이 나라가 주는 소셜연금을 받아 노후를 살아갈지라도 입에 달고 사는 언어가 한글이라면 당연히 그 한글을 갈고 닦고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지 그걸 외면한다면 한글사용 부적격자요, 혈통장애자인 셈이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미국 곳곳마다 세워지는 한인교회에서 주말마다 한국학교를 열어 한글을 가르쳐 왔겠는가?


이번 주 우리는 한글날을 맞이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어느 곳이던 교회가 생기는 곳마다 한글학교를 열어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오고 있는 한인교회들의 노력과 정성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글이 곧 애국이요, 조국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필요한 한글 표준어, 그리고 정확하게 사용되어야 할 외래어 표기법등을 홍보하고 교육시켜줄 무슨 기구 같은 걸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대통령 직속으로 ‘한글장관’을 하나 임명하던지 해서 이민자들이 눈물겹도록 사랑하며 살고 있는 한글을 가장 자랑스러운 세계 언어로 키워낼 아이디어는 없을까? 


삼성이나 현대는 세계를 주름잡는데 한글은 왜 안되는가? 

영어를 물리치고 세계 공용어가 될 수는 없는가? 


내가 시방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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