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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차지한 나라다. 


푸에르토리코는 항구(port)라는 뜻의 스페인어 ‘puerto’와 풍요롭다(rich)에 해당하는 ‘rico’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풍요로운 항구’란 뜻이다. 


그 푸에르토리코가 지금 쑥대밭이 되었다. 허리케인 ‘마리아’가 이 섬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언제 전기가 들어올지 막막하다고 한다. 


물, 식량은 물론이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주도인 샌환 시장은 같은 미국령인데 휴스턴이나 플로리다를 쓸고 간 허리케인 피해지역은 잘 도와주면서 자기네는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가 결국 둘이 티격태격 말싸움을 주고받는 일이 벌이지기도 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재난은 천재에 속한다. 


우리네 인간의 삶에 끝없이 폐해를 주는 재난 중에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천재가 있고 인간의 잘못으로 비롯되는 인재도 있다. 


누가 붙인 이름인지 몰라도 어쨌든 금년에는 ‘하비’도 오고 ‘어마’도 오고 ‘마리아’까지 겹쳐서 피해지역은 아직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재 때문이다.


천재 앞에는 그러려니 하고 고난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지만 인재는 다르다. 

사람으로 촉발되는 인재 앞에는 원통하고 적개심이 앞서기 일쑤다.


지난 월요일 새벽을 깨운 라스베가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의 총격사건은 새롭게 한 주간을 시작하려던 세계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라스베가스도 프에르토리코처럼 스페인 말이다. 영어 the에 해당하는 정관사의 여성형 la의 복수형 las와 ‘황야’를 뜻하는 vega의 복수형이 합쳐진 말이 라스베가스다. 


그러니까 황야란 뜻의 이 도시 한 복판에서 황야의 총잡이들이나 벌일 수 있는 잔혹한 마구잡이 집단 살인극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안전제일주의 나라로 보인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고추장, 된장도 샅샅이 뒤져서 식품안전상 문제가 없는지 식품의약청의 검열도장을 받아야 된다. 


방 한 칸을 고칠 때도 전기 줄을 제대로 사용했는지 꼼꼼히 안전검사를 하는 나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혹시 건물출입때 안전상의 이유가 없는지를 수시로 검사를 하러 다니는 철저한 안전공화국... 우리들의 아메리카!


그런 나라가 딱 한 가지 안전상 뻥 뚫린 데가 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문제 삼지도 않고 적당히 참아내며 사는 걸 미덕으로 알고 있는 고질병 하나, 그게 바로 총이다.


만달레이베이 호텔 32층에 정신병자던, ‘외로운 늑대’건 누군가가 투숙 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터의 전투병들이 소지하고 있어야 할 기관총이 32층까지 오르게 한 것은 이 나라의 총기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형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평범한 미국사람들의 입에선 “건 컨트롤, 건 컨트롤”을 외친다. 

이번 참사는 미국 근대사를 통해 단독범행으로 저지른 최악의 총기사건이란 브레이킹 뉴스와 함께 총기규제란 말이 TV 화면을 도배하고 있을지라도 백악관은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지 총기규제 정책을 논할 때가 아니라고 잡아뗐다.


총기사건이 날 때마다 수정헌법 2조를 들먹이면서 개인의 총기소지 권리를 구구단 외우듯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 나라를 맡기고 사는 셈이다. 


강력한 미 총기협회와 이를 지지하는 공화당이란 정치집단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총기규제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대부분은 관측하고 있다.


샌디훅 초등학교의 꽃봉오리 같던 어린아이들이 총에 맞아 억울하게 죽어갔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눈물을 쓸어내리며 총기규제를 호소했었다.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의 반열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이 ‘오마바 케어’는 성사시켰을지라도 총기규제만큼은 헛발질로 끝나고 말았다. 


오마바도 실패한 이 나라의 총기규제, 그게 지금 공화당 판국이 된 이 나라에서 어디 말이나 꺼내들 잇슈인가?


따라서 우리에게 찾아온 결론은 뻔한 것이다.

 

매일매일 총 맞을 각오를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달레이베이 호텔은 LA다운타운에 존재할 수도 있고 LA 한인타운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복불복’이다. 


총 맞지 않고 그러저럭 살아간다면 “할렐루야, 아멘!”이고 총 맞아 죽는 날엔 그날의 재수를 탓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 살벌한 총기 공화국.


라스베가스 콘서트장에서 어이없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안전한 줄 알았으나 총 때문에 가장 불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낸 국가의 무책임을 차마 묻지도 못한 채 그냥 재수가 없어 죽었다고 밖에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늘의 별만큼이나 총구멍이 열려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서운 총기의 나라 시티즌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매일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리고 한 줄 더 “우리가 오늘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여 하루의 목숨을 더 연장 받게 도와주옵시고”를 기도에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라스베가스 참사로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은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생각해 내다가 이처럼 울컥 분노가 앞서는 것은 이 나라는 결국 총으로 망할 것 같은 불길한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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