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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Labor Day)하면 우리는 그냥 놀고먹는 날로 취급한다. 대개 미국에선 5월 메모리얼 데이 연휴로 시작하여 9월 노동절 연휴까지를 휴가시즌으로 삼는다. 


연휴가 중요하지 무슨 노동절의 의미 찾기? 

대체 노동절이 뭔 날인데? 

그런 식이다. 


나도 금년 봄부터 우리 집안 식구가 된 며느리와 함께 이스턴 시에라에 있는 맴머스에 가서 가족휴가를 보내고 오긴 했다.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부활절이나 성탄절도 중요하고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중요하지만 사실 노동절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동이 없다면 꿀맛 휴가도 존재하지 않고 일터가 없다면 휴식의 의미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일터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요, 축복인지를 일터를 잃어본 사람이라야 이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 


일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직업은 곧 하나님의 소명이란 깨달음을 준 것은 마틴 루터뿐만 아니라 칼빈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칼빈의 직업소명론이란 직업의 귀천을 떠나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자리란 뜻이다.


자기직업에 충실 한 것이 곧 하나님께 충실한 것이라고 발전시킨 칼빈의 이같은 소명론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환영하고 나선 사람들이 프랑스의 위그노들이다. 


캐톨릭 교회의 박해에 못이겨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한 칼빈이 프랑스에 두고 온 위그노들에게 신학적 가르침을 주기 위해 바젤에서 출간한 책이 '기독교 강요'란 책이다. 그 때 칼빈의 나이 26세. 

그 어린나이에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학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그 방대하고 위대한 저작물을 완성했다는 것은 천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칼빈은 정녕 신학의 천재였다.


다음주 11일부터 제4차 종교개혁 발상지를 순례하기 위해 나는 또 학습여행단과 한 팀이 되어 유럽으로 출발한다. 


제네바대학교에 가서는 칼빈과 베즈, 파렐과 존 낙스의 부조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칼빈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칼빈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기 위한 탐욕이라면 죄가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 근면, 검소, 절약을 강조했다. 


그런 사람들의 자본축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생했다는 막스 베버의 주장도 있다. 


그래서 칼빈을 자본주의의 뿌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좌우지간 자본을 축적하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벌어라, 할 수 있는 한 많이 저축하라, 할 수 있는 한 많이 나누라(Gain all you can, save all you can, give all you can).”이같은 칼빈의 직업소명론에 감동한 프랑스 도시 상공업자들은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신분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터를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의 자리로 이해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고 저축했다. 


자연히 국가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프랑스 경제의 허리가 되었다. 귀족과 천민사이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중산층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귀족들과 결탁한 캐톨릭교회와 기나긴 전쟁을 벌여야 했다.


 무려 36년간 서로 물고 뜯는 신교와 구교와의 종교전쟁, 이를 우리는 ‘위그노 전쟁’이라고 부른다. 무려 수백만명이 종교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결국 앙리 4세는 위그노의 손을 들어주는 척 낭트칙령을 발령하여 개신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태양왕’ 루이 14세에 이르러 낭트칙령을 폐지하는 퐁텐블로 칙령을 발효시켰다. 


프랑스 개신교도인 이들 위그노들은 이웃 스위스, 네델란드, 독일, 영국 등 주변국으로 빠져나갔다. 


영국으로 간 위그노들은 영국 산업혁명의 선봉장이 되었다. 


스위스로 이주해간 이들은 달인정신을 발휘하여 시계산업에 기여했다. 


그들이 만드는 시계는 금방 세계의 명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가난한 스위스를 부자나라로 만들어 주었다. 로렉스 시계 등은 그런 역사를 통해 지금도 스위스의 명성으로 통한다.


그러나 위그노들이 빠져나간 프랑스는 결국 가난뱅이 국가로 전락하여 배고픈 프랑스 민중들은 참다못해 혁명을 일으켜 그 나라 왕정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신세가 되었다. 그게 바로 프랑스 대혁명. 


위그노들의 그런 직업관과 노동윤리 때문에 그들은 가는 곳마다 경제를 불러 일으켰고 잘 살고 저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본을 나누며 살았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탄생된 아담이란 인간 제1호에게까지 노동을 맡기셨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도 일하시는데 무슨 통뼈라고 우리가 놀고 먹는다는 말인가? 


이민자로 살면서 직업의 귀천 따위엔 계급장을 떼고 사는 게 이제는 우리들의 문화가 되었다. 


다만 무슨 일터가 되던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거룩한 것이란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우리들의 직업윤리에 틀림없다.


아침에 일어나 가야할 내 일터로 인하여 기쁘고 즐거워하는 에브리데이 노동절, 영어스트레스, 불체스트레스, 자식스트레스, 돈 스트레스. . 


그 많은 스트레스 중에도 내게 주신 거룩한 일터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해야 할 에브리데이 노동‘감사’절로 살아가자. 


한걸음 더 갈수 있다면 일터가 없어 낙심에 빠진 실업자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까지... 거기까지 나가보자.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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