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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그리 넓지 않은 기사식당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식사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택시기사들은 주차하기 쉽고, 잔돈 교환이 가능한 기사식당을 단골로 삼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돈인 그들은 빨리 식사할 수 있는 기사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벗어난 그들은 바로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에 오르고, 어느덧 시동을 걸고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밥 먹고 물 한모금이나 마셨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기사식당이 편했던 것인지 계속해서 기사식당을 찾게 되었고, 어느덧 두어달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 기사식당에서 혼자 밥먹는 일이 아무렇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


기사식당의 사람들 사이에서 급히 밥을 먹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저기, 담배 있으세요?"

"아, 저는 담배 안 핍니다."

"담배 없이 어떻게 삽니까, 스트레스 쌓일 텐데?"

"저는..."



한 택시기사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는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필시 두 개비를 꺼내 불을 붙여주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오늘 손님이 많았는지, 잠시라도 말동무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택시기사는 꾸깃꾸깃 접힌 지폐를 꺼내 밥값을 지불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허리를 좌우로 비틀며 스트레칭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몸 전체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피로와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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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광야에 있구나.'


매일 찾았던 기사식당에서 누구에게나 삶의 곤고함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위안이 되었다.

집안의 가장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저 일상적인 날들이 매일매일 안녕하기를 바라고 살아가고 있었고, 그 모습은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슬플때나 기쁠때에도 묵묵히 책임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다.

사방 지평선뿐인 광야에서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를 향해, 나 혼자 헐벗고 굶주리며 몸부림치는 것만 같았는데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누군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독을 묵묵히 견디며, 가족을 위해 희망을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노동의 피로감으로 지쳐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져서 정다웠고, 다른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주님은 긍휼의 하나님이다.


기사식당에서 만난 그들은 비록 돈이 한 푼도 없다거나 헐벗지는 않았지만, 평안과 안식이 없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웃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이웃을 향하는 긍휼한 마음,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성경 속 '강도 맞은 나그네'를 돕는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일 것이다.


광야의 여정에서 나만이 아니라 이웃을 바라보게 하시는 긍휼한 마음을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여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가는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과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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