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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죠이커뮤니케이션(이하 죠이)을 창립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회사를 시작했으니 뭐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다.

잘할 수 있다고, 아니 잘하겠다는 마음으로 괜스레 마음이 앞섰다.

CBS를 떠났다고 하더라도 '공연계에서 뛰어난 기획자'라고 정평이 나있었기에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연기획서를 내놓기만 하면 어디든지 공연하겠다고 나설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 사무실에 나가 기대감을 안고, 예산 책정부터 공연장 대관, 출연진 라인업을 고민하며 기획서를 작성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기획했던 공연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화려한 무대와 출연진, 그리고 가득 찬 객석, 가수와 관객들이 하나가 되는 열기, 몸이 지칠때도 있었지만, 나는 뜨거운 공연의 현장에서 관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그런 무대가 다시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게주신 탁월한 예술적 달란트가 있지 않은가.

주신 달란트에 감사하며 지금하는 일에 열심을 다 하면 될것만 같았다.

하지만 CBS의 환경과는 너무나 다른,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작은 사무실에서 나 혼자 모든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여건이었다.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서툴러서 내 마음에 적지 않은 요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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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인도하신 새로운 길임을 믿었지만, 자꾸만 물결치는 마음의 요동을 이겨내면서 새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 공모가 뜬 곳은 없는지 살피면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기획서를 완성하기 위해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다듬고 또 다듬었다.

적막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타자 소리만 들려왔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가 시장기를 느끼고 나서야 점심 시간인 줄 알았다.

혼자 밥먹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사무실 문 밖을 나서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바삐 식당을 찾아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무실 주변에는 직장인들이 꽤 있었다.

아직 주변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식당을 따라 들어가곤 했다.
맛이 괜찮아서 사람들이 많으려니 했지만, 음식 습관이 까다롭지 않은 나였으나 무엇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식당에는 대개 직장인 무리들이었는데, 그 속에서 나 혼자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식사중에도 서로 마주보고 깔깔거리고 있었지만, 나만 덩그러니 밥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당 밖으로 나서면 포만감이 없으니 밥값이 비싸게 느껴졌다.
쓸쓸하게 식당 문을 나서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이면 겹겹이 밀려드는 식사 약속을 미루는게 일이었고, 직원들과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이러한 기억들이 나를 더욱 착잡하게 했다.

그러한 마음이 반복되면서 점심시간이면 괜스레 빈 골목길을 걷다가 느지막하게 밥을 먹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였지만, 갈수록 말수가 줄어들었고 마음속은 곤고함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그날도 혼자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히 운전기사식당을 발견하였다.
가 본 적도 없었고 말로만 듣던 '기사식당' 이었으나 그리 낯설지 않았다.

왠지 기사식당이라면 말 붙일 사람 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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