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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편성국장은 방송 전체 편성과 제작을 총괄하면서 편성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편성권은 편성국장의 고유 권한이어서 회사의 방향성과 부딪치는 일도 있었는데, 임원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때도 있었다.


수많은 일들이 동시 다발로 생기는 방송의 메커니즘 탓에 매일매일 대립과 긴장속에서 업무가 진행되었고, 나는 회사 경영자의 입장과 일반 직원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심정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국장님, Y교회에서 팩스가 왔는데요"

"무슨 팩스?"


Y교회의 주일설교가 매주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주 설교중에Y교회 목사님이 개인적인 정치견해를 강력히 표명하는 설교를 하였고, 담당 PD가 그 내용을 삭제하고 내보낸 모양이었다.


이에 교회 측에서는 설교가 일방적으로 편집당한 사실에 대한 공식사과와 담당PD를 징계하고 재방송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담당PD를 불러다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다.


"아무리 목사님의 말씀일지라고 방송에 부적절하다면, 방송 PD로서 편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편집을 하고 나서 목사님께 미리 연락 드리지 못한 것은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그의 입장이 십분 이해가 되었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장실에 이 일을 보고하자, 교회측에 사과하고 이 사안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해서 이 일을 서둘러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담당 PD입장도 고려 해야 하고, 이번 일로 인해 편성국에 미칠 영향도 판단해야 했다.

나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교회와 방송국,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생각해서 가장 타당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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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며 고민한 끝에, 설교편집권을 우리가 갖고 있지만 설교를 편집하는데 있어 절차상의 협의가 있어야 했다고 보고, 교회측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설교 내용의 재편집 방송 형평성에 의거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따라서 담당 PD를 징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 


Y 교회도 이를 수용하면서 문제는 일단락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는 교회가 방송사의 방송 편성과 편집권을 침해했다며 강한 비판을 하였고, 급기야 회사 내에 공정방송협의회(이하 공방협)가 열리게 되었다. 


노사는 회사 규약에 따라 공방협을 열고 이번 사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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