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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환 담임목사
알바니 시온장로교회
(전 북가주 교협 총연합회 회장)


미국 공립학교 10학년에 다니는 유스 그룹 학생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공공연히 남자 학생들끼리 복도에서 키스를 하는데도 선생님들이 이를 제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은 즉,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의 키스 등의 애정표현은 허락하면서 남학생끼리의 키스를 금지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차별이기 때문에 선생님도 어찌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 왔다.
지난 4일 미국 연방법원은 캘리포니아주의 주민 투표를 통해서 동성결혼을 막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2008년 11월 동성결혼 금지 주민 발의안이 ‘동성결혼법’에 대한 반대 52.3% 찬성 47.7%로 통과된 지 채 2년도 안되서 그 결과가 뒤집힌 셈이다.
캘리포니아 주 동성결혼 금지법에 대한 미 연방법원의 결정은 미국의 다른 주에도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고는 이러한 연방법원의 결정을 계기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즉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남녀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사랑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규범을 파괴하는 동성결혼의 폐해에 대해서 성서신학적, 윤리적, 사회적, 교육적 측면에서 간단히 살펴 볼 것이다.
이어서 동성결혼의 금지 또는 허용에 따라 미국의 문화가 바뀔 수도 있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전 기독교인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중보기도할 때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접근 뒤에는 미국에서 이민 1세,2세, 3세를 위해 섬기는 한인 목회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밝히고 싶다.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구조와 다름과 차이를 존중해야 함을 미국사회의 마이너리티로서 절실하게 경험한 세대이며,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수히 설교한 목사이지만, 동성애는 죄라는 지적은 중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가증한” 행위이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와 질서에 반하는 “역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윤리적 죄는 언급하지 않고 유독 동성애만 정죄한다는 사회의 비판에 대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한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인들이 동성애자를 미워했다면 그러한 미움도 죄이지만, 동성애도 미움과 똑같은 죄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한 신학자의 지적 (국제신대, 이 승구 교수)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명한 지침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학자는 물론 목회자 역시 ‘내’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권위 내에서 ‘성서’에 근거하여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 연방법원이나 각 주 대법원의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결정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소위 ‘도미노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2008년 5월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의 동성결혼 인정은 2004년 메사츄세츠 주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와 맞닿아 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주는 메사츄세츠 주에 이어 두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2004년 샌프란시스코의 게빈 뉴섬 시장은 동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을 뒤엎고 수천명의 동성 커플에게 결혼 허가서를 발급한 것도 메사츄세츠 주 대법원의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
2008년 10월에는 캘리포니아 주에 이어 커네티컷 주가 미국에서 세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였다.
2008년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결혼금지 주민 발의안이 통과되었고, 2010년 8월에는 미 연방법원이 캘리포니아 주의 주민 발의안을 위헌으로 판결하였다.
동성결혼 찬성의 법리적 근거는 ‘평등법에 따라 동성애자들도 그들의 선택에 따라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성결혼에 대한 우리의 반대는 개인의 취향이나 그들의 법적인 권리에 대한 제한이 아닌 ‘결혼의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베델 교회의 서철원 목사의 지적처럼, 미국의 동성애 논쟁은 그저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아닌 ‘미국문화가 바뀌는 마지막 터닝 포인트’에 서있는 것이다.
결혼의 의미가 어떻게 정의내려 지느냐에 따라, 일부다처제, 근친상간, 사람과 동물과의 성관계 등의 정의가 재 정립되는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다루는 주요 성경 구절은 창세기 1-2장, 19장 1-9절, 레위기 18장 22절, 20장 13절, 로마서 1장 26절-27절, 고린도 전서 6장 9절 및 디모데 전서 1장 10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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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내 동성애 찬반 논쟁은 이 주요 성경구절들의 해석상의 차이에서 비롯된 신학적 입장의 차이라고들 하지만, 대부분의 성서학자들 인정하는 것은 성경은 동성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하나님의의 창조질서를 범하는 윤리적인 죄악임을 명확히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예를 들어 레위기에서 사용된 ‘가증하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몹시 싫어하시는 것을 언급할 때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이를 거부하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와 그 가르침을 완전히 저버릴 때만 가능하다’는 NIV 성경 편집자, 래어드 해리스 (R. Laird Harris)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로 보아야 한다는 윤리적 지적에 대해서도, 기독교 전통에서 옹호하고 있는 가난, 사회신분, 혈통, 인종에 따른 다른 사회적 약자들은 본인의 의지적 결단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사회의 구조적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와 달리 동성애의 경우는 윤리적인 죄이기에 스스로의 결단으로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경우라고 반박할 수 있다.
비유로 들자면, 어떤 문제로 부터 벗어나려는 사람을 끝까지 지지해 주고 돕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문제 자체를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인정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동성애자들이 미국에서 소수인 마이너리티 그룹이며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미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30여년전의 사고방식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들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그들은 다수의 힘을 가진 미국 내의 다수 이익 집단으로 성장 중이며, 법조계만 살펴 봐도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변호사협회가 공개적으로 동성연애를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릭 워렌 목사 역시 동성결혼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최근까지도 릭 워렌 목사에 대한 반대시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다.
미국의 공립학교 중 96퍼센트가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고 있으며, 성교육에는 반드시 결혼을 가르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동성결혼법이 허용될 경우, 공립학교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긍정적 주입식 교육은 정해진 수순이라 하겠다.
연령이 어릴수록 동성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20여명의 1학년 학생들 (5-6세)이 여성 동성애자 선생님의 결혼식이 열리는 시청을 방문했다고 한다.
헤이워드 K-8 Charter school에서는 ‘게이/레즈비언 커밍 아웃 데이를 기념하게 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이 유치원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 게이클럽을 만나는 시간을 가진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0월 24일자 기독신문)
내 아이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동성의 친구와 키스 등의 애정표현을 해도 무방하다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동성 친구끼리의 애정표현을 방관하는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가?
미국의 헌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disestablishment 조항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지만, 그 법 너머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은 미국으로 이민해온 이민자들이 근본적자 묵시적으로 합의한 기독교 정신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것이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가 말한 시민종교 (Civil religion)이기도 하다.
200여년간 미국을 지탱해 온 근본적인 합의가 흔들리고 있다.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또한 윤리적으로 치명적인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오늘 미국의 현실이다.
기독교 목사로서 캘리포니아 주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성경에 명시돼 있는 죄까지도 많은 이들이 합리화 시켜 방자히 행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오직 기도할 뿐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펜을 들었다.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성이 망한 이유는 동성애를 범하는 죄인 수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이 되어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하기에 교파와 지역을 초월한 캘리포니아 주를 위한 중보 기도모임의 시급함과 필요성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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