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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욱 지휘자

<글로벌 메시아 여성 합창단>


지난 주에는 찬양대에 관한 오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찬양대는 취미생활을 하는 곳이 아니라 직분이라는 것, 둘째는 찬양대라는 우월의식에서 벗어나라는 것 셋째로 찬양대는 섬김의 자리여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음악만이 하나님을 높이는 도구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해를 합니다. 


찬양을 하는 직분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장 귀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특히 찬양대원들은 다른 봉사를 하려고 생각도 안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봉사를 왜 안하냐고 따지려고 하면 마치 신앙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해버리기가 일상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할렐루야의 어근을 살펴보면 할랄이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을 높이다라는 의미보다는 칭찬하다, 자랑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에 관한 설교나 세미나를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도 너무 잘 아시는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로다’


많은 설교자들이나 지휘자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찬송을 부르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을 많이 많이 불러야 합니다. 잘 불러야  합니다." 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어원적으로 히브리어 원어를 찾아보면 "부르다"라는 동사가 히브리어로 "싸파르"였습니다. 


노래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쉬르"인데 사 43:21 의 "부르게" 는 쉬르가 아니라 싸파르 였습니다. 


싸파르는 "셈하다, 나열하다, 설명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찬송을"에서 "찬송"에 해당하는 단어는 "테힐라"로서 그 단어는 "할랄"의 명사형일뿐이었습니다.


즉, "칭찬, 자랑"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어원적으로 정확히 다시 해석하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칭찬거리, 자랑거리를 설명하게 하려 함이로다"


우리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칭찬거리, 자랑거리를 설명하도록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를 설명하는 방법은 음악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음악을 통한 찬양만이 하나님을 높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찬양대라는 직분보다도 더 하나님을 칭찬하고 자랑하는 자리를 섬긴다면 그것은 찬양대보다 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더욱더 섬김의 자리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러한 삶에서 나오는 삶의 향기가 찬양의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려진다면 점점 사라져가는 찬양대가 점점 살아나는 풍성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귀한 도구로 사용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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