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 드 디오스(Aqua De Dios)에서 생긴 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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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주정인 목사
<프리몬트 제일 장로교회>

 

폭포같은 강한 성령의 임재가 아니었다만 샘물이 솟아 오르듯 곳곳에서 성령이 흘려 나왔다. 사랑을 실고 온 산들 바람 같은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
구석구석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와 찬양 소리가 들려왔고, 또한 치유가 일어났다면서 감사의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기뻐 뛰며 좋아 들 했다. 우리 아이들도 너무나 기뻐서 그칠 줄 모르고 깔깔 웃어 대기도 했고,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랑이 넘쳐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 껴 안고 “사랑합니다.”라고 고백들을 했다.
 ‘하나님의 물’을 마음껏 마시고 영혼이 소성케 된 것이다. 미국을 위시해서 여러 곳의 집회에 참석을 해 보았지만 이런 성령 충만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마5:3)의 말씀과 같이 그들의 마음이 가난했기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라는 말씀과 같이 그들의 은혜를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 때문에, 아니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라는 말씀과 같이 그들의 마음이 순수했기에 이런 큰 은혜를 내려 주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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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선교팀인 우리는 ‘하나님의 물’ 곧 생수를 마시는 큰 수지를 맞았다.
그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려갔었는데 오히려 큰 은혜를 받고 오게 된 것이었다.
   이번 단기선교를 마련한 것은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 아이들이 이 단기 선교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배우고, 그리고 사역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아이들 중 더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설령 구원의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은혜가 없어 생명력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곧 무감각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철부지 신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물’을 마시므로 단기 선교의 제일 큰 목적이 이루어 진 것이다.
   우리 인류는 죄악으로 찌들어 있다. 그 죄악으로 인해 마음과 몸이 병들어 있다. ‘아쿠아  드 디오스’ 마을의 한센병 환자들이 ‘하나님의 물’에 몸을 담궜을 때 치료를 받은 것 같이 영적 무감각한 우리에게, 삶에 많은 상처를 받은 우리에게 치유의 ‘하나님의 물’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물’을 마심으로 영혼이 소생케 됨을 말씀하셨다(요 4: 10). 이 물을 마심으로 영생(요 4: 14)과 한없는 희락과 평화(계 21:2,3,22)와 치료와 회복을 약속하셨다(겔 47: 8-10). 이 모든 은총들은 어린양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물’을 흘려 넘치게 주시는 것이다(요7:37-38).
아직도 자신의 죄와 질병의 치료를 위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가? ’하나님의 물‘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 분이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모든 것을 치료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믿는 자 중에서 혹시 깊은 은혜의 체험을 하지 못한 자,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자가 있는가?  ’하나님의 물‘인 성령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히 주실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서 산꼭대기에 있는 화전민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 꼬불꼬불한 길을 차를 몰고 올라갔다. 무슨 귀한 손님이 온양 온 동네가 들썩하며,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반겨 주었다.
주름이 잔득한 연로하신 분이 골동품 같은 기타를 치면서 우리를 위해 환영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가사는 모르지만 흑인연가 못지않게 무척 애절함이 젖어 있었다.
그 노래에서 능히 그의 지난 삶을 알 수 있었지만 이어진 그 노인의 환영사에서 그들의 소외와 외로움과 굶주린 가난한 생활의 고통을 말해 주었다.
곧 ‘비탄의 다리’의 실상이 그 노인을 통해서 철철 흘려 나왔다. 누가 그들의 아픔을 보상을 해 줄 수 있을까? 우리로서는 할 수 없어 그들을 위로해 주실 분은 예수님뿐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라고 말씀을 전하고 떠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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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사역지인 한센병 병자 수용소를 가는 도중 긴급 연락이 왔다. 한 성도께서 자신의 어머니가 발에 암에 걸려 고통 중에 있어 기도를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신령한 목사는 아니지만 기꺼이 응해서 달려갔더니 한 노인이 엉성한 나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도를 하자”고 했더니 덮었던 이불을 걷어 올렸다.
발이 없는 뭉뚱한 다리가 아닌가! 한센병으로 발이 잘려 나가고 이제 그 다리에 암이 걸려 다리를 짤라야 할 형편이었다. 조잘거리며 까불던 아이들이 그 다리를 보고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를 보니 내가 목이 메여 기도를 하지 못해 옆에 있는 14살 먹은 우리 중에 가장 어린 미셀에게 기도하라 했다.
섬짓할 만도 한데 당차게 환자의 발을 꼭 잡고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진심과 연민에 젖어 기도하지 않는가! 그녀의 기도가 환자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었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도 울렸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그녀의 어머니께서 “철없는 저것이 선교지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좀 배워 변화되었으면.”하고 보내었는데 그의 어머니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 환자의 치료여부는 내년에 갈 때 알아 볼 참이다.
   다음 사역지인 환자 300명이 요양하고 있는 그런대로 잘 꾸며져 있는 한센병 병원을 찾았다. 5년 전에 갔을 때는 남자 병동을 찾아 심방을 했지만 이젠 여자 병동을 찾았다.
한가로이 침대에 걸터앉아서 햇볕을 쬐는 분, 세상을 잃어버린 듯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찬양을 하니 여기저기서 휠체어를 타고 우리의 주위로 몰려든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나고 좋았다. 간단한 찬양이 끝난 후 각 조를 나누어서 통역관을 붙여서 환자들을 위로, 격려, 전도, 기도하게 하였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만난 분은 첼리타 할머니였다. 그는 79년 전에 콜롬비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었는데 그녀가 채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한센병에 걸렸고, 곧 이어서 어머니가 걸렸다. 그녀는 다른 언니들과 다른 한센병자들의 아이들과 함께 수용소에서 고아 아닌 고아 생활을 하였다.
두 해가 지난 그가 일곱 살 때에 그녀도 그 못 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 역시 바구니에 실려 ‘비탄의 강’을 건너 이곳에 온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다른 곳에 수용되어 있던 부모님들이 이곳으로 오게 되어 가족이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다.
그 나이 서른둘에 왼쪽 눈을 잃고, 이어서 오른쪽 눈마저 잃었고, 또 예상했던 대로 손발도 잃어버려 남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완전한 특급 장애인이 되었다.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으로 간간히 시를 써서 모았다. 가끔 시작을 발표하기도 하고 “잠 못 이루는 슬픈 밤”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지금 그녀를 한센병 시인이라고 불려주고 있었다. 지금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를 쓰면서 시와 함께 아름다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녀를 위로를 해 드리기 위해 마주 앉았다.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쓸어 드릴 수 있을까 궁리를 해 보았다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했다.
만국의 언어인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모두 잘 아는 찬송 “Amazing Grace” 등의 곡에 간단한 스페니쉬 몇 단어를 부쳐서 불렸다. 그 노래를 아시는지 마냥 어린 계집애 같이 즐겁게 따라 부르신다.
내가 손벽을 치면서 부를 때도 함께 그 손이 없는 팔로 무릎을 치면서 깔깔되면서 부르신다. 나의 기도를 듣고 난 후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지만 충분히 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너는 나의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것 같다만 그러나 나의 지난 고통이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었다.” 하셨다. 참으로 그렇게 보였다.
그 긴 험난한 삶을 살았음에도 그 모습 속에 고난의 찌듬도,  삶의 ‘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혀 추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평안함 안에 예수님께서 안식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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