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종말론에 빠져 '날짜 맞추기'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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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밀리 라디오가 계속해 온 5월 21일 ‘최후 심판의 날’ 광고.

 

지난 21일 휴거를 예언했던 미국 ‘패밀리 라디오’ 설립자 해롤드 캠핑이 불발 후 침묵으로 일관하다 23일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진정한 휴거는 오는 10월 21일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미국 기독언론 등에 따르면 캠핑은 5월 21일 휴거설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없었으며 이는 지나친 문자적 해석의 결과였다고 해명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성경은 분명히 ‘그 날과 그 때는 알지 못한다’(마 25:13)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왜 시한부 종말론은 계속 등장하는 걸까. 신학자들은 편협한 종말론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성경해석이 날짜를 계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다수 신학자들은 데살로니가전서(4:16∼17)에 나오는 휴거 구절은 재림하는 주님이 이 땅에 오는 것을 ‘영접하기 위해’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시한부 종말론의 입장은 다르다. 문제의 휴거설은 이른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기인한다. 그 중에서도 급진적 견해인 ‘전환난기 세대주의’에 따르면 천년왕국(계 20)이 시작되기 전에 나타날 대환난에 앞서 휴거가 일어난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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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잠적했다가 22일 오후에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캠핑은 “휴거가 일어나지 않아 놀랐다”며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번 발생한다고 본다. 첫 단계는 그리스도가 공중에 재림하면 죽은 신자들의 부활이 일어나고 이후 살아있는 신자들의 휴거가 일어난다. 곧 7년 대환난이 이어지면서 적그리스도의 통치와 무서운 심판,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속, 신자들의 고난 등이 나타난다. 두 번째 재림은 7년이 끝난 시점에서 일어나고 이후 천년 통치가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세대주의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성경해석의 경향이 시기를 추정하려는 유혹이 생긴다는 게 신학자들의 지적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조직신학) 교수는 “일부 세대주의자 중엔 종말의 징조를 찾아 재림 시기를 따진다”며 “날짜를 명시하는 것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을 뿐 더러 그 배후에서 날짜를 계산하게 만드는 해석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내 요한계시록 권위자로 알려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필찬(신약학) 교수도 “그릇된 휴거설은 세대주의의 필연적 결과”라며 “세대주의 신학 자체가 재림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경은 재림보다 초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한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에 대한 말씀이 훨씬 더 많다”며 “그리스도인이라면 현재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 것인가를 물어야 하며 동시에 재림을 통해 완성될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구 교수도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이미 (예수) 초림 때 시작됐으며 지금은 종말 시대를 살고 있고, 재림 때는 종말의 극치에 이르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종말이 이미(already) 왔지만 아직 아니라(but not yet)는 것이다.
성경통독원 조병호 목사는 “재림의 날짜와 시간을 알려고 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보는 균형감각을 갖추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라며 “성경을 해석하면서 지나치게 시대 상황이나 역사를 대입해 극대화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 이중재림설,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 등은 세대주의 해석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교회 역시 초기 선교사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후 60∼70년대 ‘역사적 전천년설’이 부각되면서 80년대까지 세대주의와 전천년설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다수 신학자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지금은 무천년설 입장도 많다. 세대주의는 성경해석의 독특함 때문에 이단 발흥에도 쉽게 노출돼, 일부 단체가 성경을 왜곡하고 있고 최근엔 기독교 내부에서 ‘백투예루살렘운동’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기독교강요’ 제3권 25장에서 “종말의 때를 시기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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