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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Bay 복음선교회 회장(대표)
시온 장로교회 음악목사(D.C.M)
전 SF 기독대대학교 대학원 교수(D.Min, Th.D)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22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은 예배는 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 지를 알지 못하고 예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마리아 인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예배의 본질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4장24절)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예배의 본질적인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신령으로 예배”하는 것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해 주셨지 때문입니다.


-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은 헬라어로는 “푸누우마” 즉 성령이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즉 성령이란 성령이고 신령한 것이 되어의 신령 것은 “푸누우마티” 즉 성령으로 신령한 것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의 핵심적인 뜻은 신령한 것, 즉 성령의 것이 되어 예배 드려야 함을 지적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신령한 것이 된 사람일까?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에서 내가 신령한 것이 되어 예배를 드리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그것은 곧 상한 심령으로 예배 드리는 것을 뜻하며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의 심령이 되어 회개를 통해서 영이 정하게 씻음 받고 드리는 예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것들이 흠과 티가 없는 깨끗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신약의 영적 예배에서는 통회 자복하고 회개하여 신령하게 될 것들 이라야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없이, 참으로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는 심령들이 되지 않고서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롬12:1에서 말씀하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라”에서 산 제물(Living Sacrifices)로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회개하여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되어 신령한 것 된 몸을 산 제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As living sacrifices는 신령하게 된 몸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우리들이 먼저 신령한 것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
이것이 거룩하고 기쁘시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물이다(Holy and pleasing to God).
즉, 거룩하고 기쁘시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산 제물로 너희 몸을 드려라, 이것이 너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요4:24절로 돌아와서 이제는 신령과 진정에서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을 말씀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진정(알레세이야)으로 드리는 예배
알레세이야/Tell the truth/진정으로 엡4장21절에서는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The truth that is in Jesus) 예수님께서 진실을 말씀한 것을 진정(알레세이야)으로 라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엡4:25에서는 참된 것을 말한다 할 때에도 같은 단어 ‘알레세이야’를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엡1:13, 골1:15, 딤후2:15에도 진리의 말씀을 말한다 할 때 이 진정으로 란(알레세이야) 단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의미는 거짓됨이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 드려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엡6:14에서는 이 진리로 허리 띠를 띠라고 또 말씀합니다.
이 진리를 허리 띠를 띠라는 말씀은 경건한 생활, 거짓이 없는 생활, 깨끗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린다는 의미에서 진정(알레시이야)이란 뜻은 진리로 사는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 되어 진리로 사는 삶이 영적 예배의 삶이요 또한 생활의 예배가 됨을 뜻하며 이것이 곧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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