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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주정인 목사
<프리몬트 제일 장로교회>

 

먼저 독자 여러분에게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좋은 소식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 저녁  TV뉴스에서 세계 각 나라의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꽃놀이,  화사한 장식들,  신나게 연주되는 음악 등의 다양한 모습들이 신년을 맞는 축제의 분위기를 더 했다.  
그 축제 가운데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춤을 추며, 소란을 떨며 야단이다.  그들을 보면서 “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이 되면  무슨 잔칫날인 줄을 알고 시끌시끌하게 즐기고, 연휴라고 생각하여 여행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날로 생각들 한다.  
새해를 잘못 이해하여 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한해를 허송세월로 보내어서는 안 된다.
   새해는 순수한 한국말의 ‘설’로서 ‘설다’에서 왔다. ‘설다’는 곧 설익은 것을 말한다.  곧 ‘설날’은 설익은 날의 시작으로 연말에 좋은 결실을 위해, 한해를 복되고 순조로운 날이 되기 위해 신중하게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날이다.  
서양에서 1년 중의 첫 시작하는 달을 January라고 한다. 이것은 희랍의 ‘야누스’에서 왔다.
이 야누스는 한 얼굴은 뒤를 보고 있고 또 다른 얼굴은 앞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얼굴을 가진 ‘시작이요 마지막의 신’이다.  
서양 역시 새해를 맞이하는 태도는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새날을 신중하게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더 신중하게  새해를 맞이하여 뜻있게 새로운 한 해를 살아야 되지 않겠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첫날을 어떻게 하셨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다. (창1:2-5) 하나님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깃든 땅에 광명을 비추셨다.(창1:2-3) 곧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명의 새 날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묵은 해가  탐욕과 다툼과 시기, 정욕 등으로 얽매인 혼돈스럽고, 공허하고  어두웠던 한해 였다면,  또한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되풀이 되는 회오에 그친 세월이었다면 이젠 새롭게 ,  빛 된 아름다운 새날을 창조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아름답게 깊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재 창조를 위해) 일한다.” 하셨듯이 우리도  신년에 열심을 다해 아름다운 자신의 삶을재창조해야함이 임무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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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수님께는서 세상의 빛이며,(요1:4,8:12)  “흑암을 비추는 큰 빛이라” (마4:16)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면 된다.(히12:2)  이렇게 할 때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광야 40년 생활을 불기둥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이 대망하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던 것같이,  동방박사 세 사람을   큰 별빛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이 목적한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하셔서 큰 기쁨을 그들에게 안겨 주셨듯이,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바라는 기쁨의 대망의 한해를 선물로 허락해 주실 것이다.
또 하나님의 창조의  첫날은 광명과 어둠이 나누어진 날이다.(창1:4) 이 말씀은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은 어두운 절망 적인 상황 가운데서 좌절하거나 자포자기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갖고 난관을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히11:1)하시며 믿음의 정의를 ‘희망’이라고 하시지 않는가?  항상 예수님은 희망을 가지고 사셨다.  
세상의 밑바닥의 삶을 산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를 보았을 때 앞으로 자신의 발에 옥합향유를 깨뜨리고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 것으로 보았다.
탐욕에 가득한 탐관오리였던 삭개오를 보았을 때 앞으로 믿음의 절개를 지키고 훌륭한 제자가 될 것으로 보았으며,  병들어 죽은 나사로를 보면서 다시 살 것으로 보았다.  
그 리고 조그만 겨자씨 그 자체를  보시지 않고 장차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우리도 지금 암담한 내 앞에 펼쳐져 있는 환경을 보지 말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믿고 희망을 품고 살 때 연말에 기대이상의 많고 좋은 결실들을 거두어  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강영우 박사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는 무척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을 했다. 14살 때 축구공에 맞아 시력을 잃은 장애자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실명에 쇼크를 받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소녀 가장으로 직공 일을 하면서 동생을 돕던 누나마저 과로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남은 동생들은 고아들로 뿔뿔이 헤어졌다.
강박사는 맹인 재활원으로, 둘째 동생은 철물점 직공으로 그리고 셋째는 고아원으로 갔다.  
그러나 그 후 40년 그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서 한국계로는 미국 정부의 으뜸가는  고위직 인사가 되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는가?
   그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 새기고 이 말씀을 희망 삼고 살았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나는 귀하고 존귀하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명과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  마음에 새긴 이 희망이 자기를 절망, 좌절, 자포자기, 열등감에서 그를 지탱하여 주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힘의 끈이 되었다.
   희망은 절망을 이기게 한다. 삶에서 좌절하지 않게 하고 용기를 심어 준다.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게 하는 힘이 된다.  
더 나아가서  희망은 믿음을 굳게하여 준다.
   어제 한 뉴스의 타이틀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Adieu to a tough year.” (어려웠던 한해여 안녕히)  이 기사처럼 지난 한 해 가정, 사회, 국가,  온 세계가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많은 우는 소리들을 토해 내었다.
어찌하랴? 2012년도 역시 더욱 어둡고 얼어붙는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들 한다.
그 러나 미리 염려할 것 없다. 어두움을 바라보지 말자. 하나님께서 어둠과 광명을 나누셨다”하고 하시지 않았나?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해 주시리라.”(잠3:6)  혼자서 이루려고 애쓰지 말고 희망을 갖고 하나님를 의뢰하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자.  
그렇게 하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고아같이 저버리겠는가? 그분이 어련히 알아서 잘 도와 주실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갖고 설네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 하자. 또  선물로 받은 이 한 해를 ‘빛의 자녀’로서(살전 5: 5), ‘세상의 빛’으로서(마5:14) 타락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어둔 세상을 밝게 비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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