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계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하고 그리고 예배의

갱신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The Principle for Worship Renew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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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Bay 복음선교회 회장(대표)
시온 장로교회 음악목사(D.C.M)
전 SF 기독대대학교 대학원 교수(D.Min, Th.D)

 

지난번 기고에서는 예배갱신의 원리 두 가지를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원리는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두째 원리는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셋째로 예배는 교회론적이며 또한 성령론적이고, 그리고 표적(Sign)으로써의 성격을 갖게 됨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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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곧 교회론적입니다.
즉,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대한 예배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의 구속을 성취하시고 그 신부를 사랑하신 그 모든 사역들을 선포하고, 해설하며, 함께 즐겨 기뻐하고 찬양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의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성격입니다.
이 예배의 공동체적인 성격은 ‘성찬식’에서 더욱 강조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식에는 온 교회가 함께 모입니다.(곤전 11:18,33, 14:23)이 함께 모인다는(Synaxis)말은 초대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예배를 위해 모인다는 것을 일컫는 전문용어였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행위이므로 확실한 공중예배(Public Worship)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공중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일 때에 공중예배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18:20)

 

예배는 성령론적입니다.
즉, 예배는 성령의 권능적 사역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 사이의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말합니다. (영과 영의 만남의 사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예배를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의 영과 결합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관해서 아주 시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돔8:15, 26~17)
(For you do not receive a sprit that makes You a slave again to fear, but you received the spirit of sonship and by him we cry, “Abba, Father”)
그러므로 예배에서 성령의 본직적인 기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빌립보 3:3의 “하나님 성령으로(by)”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예배하며 그리고 예배 공동체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 복음적 내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 공동체는 이 세상과 이 세상 안에서의 우리의 삶을 재해석하고 성령의 힘으로 그 위대한 내용의 주제들을 선포하고 행위로 옮기에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와 이런 가도로 볼 때에, 예배는 우리들의 삶의 실존적 의미를 극화하고, 실존자체의 핵심,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하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하는 거룩한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배의 Sign으로서의 특징은 선례 전 특히 세례와 성찬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례에서의 불과 성찬에서의 빵과 포도주는 그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대한 표적 즉 Sign인 것입니다.
그리고 죤 칼빈은 이것을 서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무튼 이것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로서의, 그리고 그 구원사역에 대한 동참으로, 원래적인 구원사건을 다시 한번 재연하도록 하는 Sign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예배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선포요 또한 독특한 구원의 현존성을 의미하는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유형적인 수단(즉 말씀 선포와 만찬의 재정)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된다는 것과 우리는 보고, 접촉하고, 먹는 우리의 응답이 또 유형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이런 것들이 예배 안에서 눈데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이루어지는 이 Sign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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