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빙자한 사이비집단은 신도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가정을 파괴했다. 

탐욕을 추구하며 계열사 확장을 꾀한 전 세모그룹 유병언 일가는 왜곡된 교리를 이용해 신도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피해자들은 구원파가 종교적 세뇌와 착취로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입을 모았다. 

11일 구원파 피해자 모임 전해동 대표에 따르면 구원파는 자신들의 계열사 유지를 위해 교인들에게 각종 기금이나 작정헌납을 요구했다. 

만약 돈을 제 때에 내지 못하거나 모자라면 ‘사탄의 자식’ ‘귀신 들렸다’는 말로 왕따를 시켰다. 

전씨는 “구원파 지도부는 신도들이 기금을 내지 못할 경우 ‘하나님이 거지냐? 하나님이 채워 주지 않느냐’면서 따졌다”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면서 영생을 주셨는데 너는 왜 보답하지 않느냐고 정죄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1991년 당시 고3 때 구원파에 들어갔다. 

어떤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구원을 한 번만 깨달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는 잘못된 교리에 속아서였다. 

그는 대학 입학 후 가족들과 분리돼 구원파 모임에서 2년 동안 집단으로 숙식했고, 97년에는 2000년에 종말이 온다는 주장에 속아 대학공부를 포기했다. 

전씨는 구원파 시절 14년 동안 1억원을 헌납했고 이 과정에서 카드빚만 1000만원 넘게 떠안으며 자살충동까지 느꼈다. 

그에 따르면 구원파는 기금 마련을 위해 대출이나 빚보증도 불사한다. 

그때마다 종교적 목적을 들이댄다. 

여기엔 극단적 종말론이 동원됐다. 

이 세상은 머지않아 불탈 것이며 은행돈도 하나님의 것이고 휴거되면 이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빚은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었다. 

또 다른 피해자인 A씨 역시 이런 식으로 80년대 중반, 유병언 구원파에게 5000만원을 빼앗겼다. 

기금 마련을 위해 그의 아내는 친척들의 돈까지 끌어 모았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유병언은 설교 도중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냐. 

시집 장가는 왜 가고 애는 왜 낳느냐’며 ‘모두 바치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유병언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A씨는 미련 없이 구원파를 탈퇴했다. 
그는 지금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이 파탄 난 경우도 있다. 

B씨는 장모가 구원파 신도였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처가의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 독촉에 시달렸고 결국 이혼했다. 

유학생 C씨는 미용실을 경영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기도원에 다녀오더니 구원파에 빠졌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우리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젠 어머니 마음을 돌릴 길이 멀어 보여 기도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동섭 전 침례신학대 교수에 따르면 유병언은 84년부터 자신을 ‘사장’으로 부르라고 교인과 사원들에게 지시했다. 

이후에는 아무나 구원받게 할 필요가 없다는 ‘영적 산아제한론’을 펴며 의사나 대학교수, 연예인, 부유층 등을 구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교수는 “70년대 말까지 기독교계에서 문제가 되자 사업가로 변신한 유병언은 자선사업가로 자신을 알렸다”며 “하지만 그는 더러운 이익을 취하려고 신도들의 가정을 온통 뒤엎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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