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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욱 <바리톤>


세상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을 정확하게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찬양팀 또한, 교회에서 배척될 것


필자는 성악을 공부하고, 오페라, 그리고 지휘를 배웠고, 직업합창단 활동과 20여 년간의 성가대 지휘자로 사역하다, 하나님의 뜻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자를 통하여 예배음악과 예배Directing사역을 하기를 원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개 교회를 위해 지휘자로서, 음악목회자로서 사역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제가 배우고 듣고 느껴왔던 사역자로서의 생각을 정리하며,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신학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마친 지금, 그간 써왔던 논문들과 신학생들과 토론했던 이야기들을 몇 편의 이야기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전문적인 사역자가 없어 평신도께서 사역하시는 작은 교회들과 이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식음악은 죽고, 대중음악은 살아 있다.”
위의 전제를 교회에 다시 대입하면‘성가대는 죽고, 찬양팀은 살아있다’가 된다.
이 이야기를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제시하였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아니,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럴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애써 외면해 왔었다.
그러나, 현재 세상은 아이돌 가수들이 휩쓸고, 음악은 이미 락 음악을 지나서 후크 송(같은 멜로디를 많이 반복하는 노래: 소녀시대의 Gee)로 대변되는 하우스뮤직으로 매우 강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반면, 교회의 음악은400년 전 음악부터 현대의 성가곡까지 매우 광범위한 음악들을 연주하고 있는데, 적어도 현대 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음악의 장르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즐겨 듣는 익숙한 음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CCM에 관심을 갖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점점 극단화 되면서, 교회의 음악은 살아남기 위해 성가대를 필두로 하는 클래식음악과 찬양팀으로 대변되는 대중음악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두 음악은 즐겨 연주하고 듣는 대중들도 반으로 갈랐는데, 성가대는 주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그리고 찬양팀은 주로 젊은 층이 선호하게 되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더 이상 성가대를 할 수 없을 만큼 세월이 흐른 후(필자는 10년에서 길게는 15년으로 생각한다) 성가대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성가대가 없어진 교회들의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들이다.
또한, 찬양팀은 점점 더 커지고 성장할 것인데, 세상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을 정확하게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찬양팀 또한, 교회에서 배척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20~30대도 10년 후에는 30~40대가 되고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변해가는 새로운 음악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성가대와 찬양팀에 대한 비평과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필자는 결국에 이 둘이 연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성가대와 찬양팀의 본질적인 차이와 역할을 이해한다면 두 단체가 함께 동역 해야 한다는 사실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다.

1.   성가대
  a. 외형적인 현상
클래식 음악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Local에 있는 음악가들은 실력이 모자라고,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음악가들은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인터넷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직접 들을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지역에 살고 있는 음악가들이 나의 음악 수준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You-Tube를 통해 이 전에 어렵게 구해 들었었던 그 옛날의 Maestro(대가)의 음악을 단 한번의 클릭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Local에 있는 음악가는 결국 실력이 모자라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세상은 단순히 연주를 잘 하는 음악가를 원치 않는다.
방송국은 Quality(재능)보다는 Story(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나, 엘리트 음악 교육을 받아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노래를 너무 하고 싶었으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꿈이 좌절되었었고, 중국집 종업원을 하며, 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으며, 핸드폰을 팔며 그 꿈을 키워왔던, 사실 정말 잘 하는 음악가는 아니지만, 그의 목소리의 단점을 토로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기구한 삶으로 간단히 무력화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러한 환경들은 몇몇 정말 잘하는 음악가들만 살아남게 하고, 나머지는 도태시킨다.
점점 음악 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있다. 적어진다는 것은 경쟁력이 줄고, 점점 실력 있는 음악가도 적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클래식음악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 찾는 음악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성가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전에는 성가대가 잘하는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문학의 밤이 교회의 문화로써 꽃을 피우던 시절, 교회에서의 가장 중요하고 돋보이는 자리는 성가대였고, 현재 활동하는 음악가들의 80~90%는 교회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회와 성가대는 음악가들을 길러내는 귀중한 곳이었다.
교회는 분명히 세상의 문화를 이끌어가던 시대가 있었다. 여타 종교들이 할 수 없었던 귀한 하나님의 사업을 교회가 했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했다. 80년대 군사 독재가 끝나면서 세상은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문화를 쏟아냈다.
드럼과 기타소리가 시끄럽던 Rock 음악은 한 때, 자유를 향해 몸부림치는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처럼 보였으나, 세상이 바뀌면서 이 Rock음악이 대중적으로 발전되고, 교회 음악에도 적용이 되었다.
복음성가로 불리던 새로운 교회음악은 가스펠송이라는 이름으로 발전 되었고, 보다 상업화 되면서 CC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젊은 목회자가 있는 교회들은 이러한 새로운 교회음악을 교회에 적용시켰지만, 아직 완강한 교단이나, 중년의 목회자들은 드럼과 기타소리가 교회에 울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결국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위한 문화가 존재하는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하게 되었다.
결국 보수적인 교회는 젊은이와 기성세대의 갈등으로 따로 예배를 드리거나, 부모는 기성 교회에 자녀는 새로운 교회로 나가게 되는 우스운 현상을 맞이 한다.
이러한 현상을 제일 많이 목격하는 곳이 연합찬양제이다.
교회마다 구성원이 틀리므로 다른 선곡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근간에는 아예 MR(반주음악)에 맞춰 춤추며 찬양하는 교회, 드럼과 기타를 중심으로 찬양하는 교회들도 출사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가대는 얼마나 더 오래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들을 받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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