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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성도교회 서병호 목사(왼쪽), 권기자 사모가 지난 1일 20년째 지켜온 지하교회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12년이 저물고 있다.
한국사회는 물론 교계에서도 갈등과 대립, 반목 때문에 힘든 한해였다.
하지만 지역 곳곳에서는 신앙의 본질을 고민하면서 전도와 선교, 섬김 사명에 헌신하는 ‘광야교회’는 아직도 많다. ‘목회를 계속 이어가야 할까’ 기로에 선 미자립교회, 똘똘 뭉쳐 자립에 도전하는 작은 교회들, ‘도시의 이방인’ 영구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친구가 되어준 이웃 교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에 나선 세종시의 개척교회 전도현장을 들여다봤다.
3년9개월 만에 다시 찾은 안양성도교회에는 변한 게 없어보였다.
 66㎡(약 20평) 규모의 지하 교회에는 곰팡이 냄새가 여전했고, 예배당 천장의 벗겨진 페인트와 녹슨 철근 골조도 그대로였다. 바뀐 것도 있었다.
낡은 교회 출입문에는 그 사이 ‘신천지 출입금지’ 포스터가 새로 붙었고, 안양시가 시설물 안전을 이유로 낡은 십자가 탑을 교체해줬다.
그리고 10명이었던 성도는 6명으로 줄었다.
20년째 지하 교회를 지켜온 서병호(61) 담임 목사는 더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요즘 들어서 또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길을 계속 가야하는지,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지….”
서 목사의 넋두리에 옆에 있던 권기자(52) 사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정말 목회를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목사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이고, 아버지이잖아요. 기본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목회만 고수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서 목사 부부의 사연은 본보에 한차례 소개된바 있다(2009년 2월14일자 21면).
당시는 물론 4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양성도교회의 상황은 대다수 개척·미자립 교회들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교인수 부족→교회유지 곤란→교인추가 이탈→교회 상황 악화’ 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중·대형 교회와 후원자들의 도움은 ‘반짝 효과’일 뿐, 근원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현재 주요 교단 및 교계 단체가 소액 지원금 보조 위주로 펼치고 있는 ‘개척·미자립교회 지원정책’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성도교회는 4년 전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4000만원이 넘는 빚더미에 올라 파산 직전에 처했었다.
교회 운영을 위해 돌려 막던 카드빚 때문이었다.
주위 도움으로 어느 정도 급한 불을 껐지만 그때뿐.
서 목사가 만성 대상포진을 앓고 있어 권 사모는 또 다시 일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3
년 전에 세신사(일명 때밀이) 기술을 배워서 올해 초까지 목욕탕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2년 정도 일하면서 교회 운영도 돕고 빚도 어느 정도 갚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몸 이곳 저곳에서 고장이 나더라고요.”
더 큰 문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목회 여건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도교회의 매주 헌금액은 평균 1만2000원. 교회 주보비용(기본 30장 기준)은 1만3000원이다. 이보다 더 큰 고민은 교인 수다.
현재 교인 6명은 모두 70∼80대 노인들이다. 정년은퇴가 9년 남은 서 목사 나이를 고려할 때 수년 내에 성도없는 ‘성도교회’가 될 공산이 크다.
“요즘 젊은 교인들은 지하인데다 노인들만 모여 있는 교회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고요.”
서 목사는 고민 끝에 올 초 열린 교단 노회에서 동료 목회자들에게 ‘은퇴 형식으로 목회를 그만두면 어떨지’ 자문을 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한가지였다. ‘하나님의 일은 참고 끌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사이 서 목사는 ‘미자립교회 목사’라는 이유로 적지 않은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 그는 알고 지내던 한 전도사가 “미자립교회 목사님을 돕는 고마운 단체가 있다”고 권유해 따라나섰다가 도망치듯 빠져나온 일이 있다.
“예배로 행사가 시작됐는데,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내가 얼마를 벌었다’는 간증 비슷한 발표가 있고 얼마를 내면 일정한 수익이 보장된다는 말도 하고…. ‘아차, 다단계 조직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 목사는 당일 현장에서 마주친 수백명의 개척·미자립교회 목사들을 떠올리면서 ‘나같은 미자립교회 목사들의 권위가 이 정도구나’하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서 목사는 며칠 뒤 그 단체가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노린 다단계 사기조직이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또 한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 전 성도교회는 외부 단체로부터 10㎏짜리 쌀 10여 포대를 후원받았다.
서 목사 부부는 상의 끝에 교회 성도들과 이웃 개척교회 2곳에 한 포대씩 골고루 나눠주면서 생전 처음으로 묘한 기분을 맛봤다.
“‘아, 주는 기쁨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매번 받아만 봤거든요.”
주고 싶지만 아직까지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 한국교회의 70%에 달하는 미자립교회들이 처한 2012년 겨울의 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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