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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영 집사
 <북가주 메시아 합창단원>


내가 오래 살았던 버팔로(Buffalo, NY)는 눈이 많이 오는 탓인지 한인들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그곳 주 산업이었던 베들레헴 스틸(Bethlehem Steel) 이 포항 제철에 밀려 문을 닫은 후 인구가 점점 줄고 있었다.
다행히 캐나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토론토가 그리 멀지 않아 가끔 한국 음식도 먹고 장도 보고 장한나, 장세라(Sarah Chang), 조수미, 홍혜경, 치칠리아 바톨리(Cecilia Bartoli), 캐슬린 베틀 (Kathleen Battle)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발레단을 보러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인들 중엔 의사들이 가장 많았고 주립대학 교수와 사업인 몇 분과 유학생들이었다.
강사 목사님들은 “의사가 가장 많은 교회라고 하시던데 의사 분들 손 좀 들어 보시겠어요?” 그러면 대부분의 남자 교인들이 손을 들었다.
그래서 인지 성가대 지휘자도 의사였다. 음악성이 뛰어난 분이었지만 환자보기 바빠서 메시야 전곡을 지휘하기엔 힘겨운 분이란 것을 알면서도  "메시야 합창을 하게 해 주세요" 기도를 드렸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없이는 도저히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5년의 기도는 바람에 날라 간듯 이루어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990년 전후 그 곳 주립 대학이 건물을 크게 증축을 하고 괜찮은 학교로 소문이 나서 한국 학생들이 많아진 탓인지 맏형 장로교회와 작은형 천주교회의 뒤를 이어 막내 동생 감리교회가 태어났다.
그 때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겠다던 우리 큰 아들이 감리교 목사가 되겠다며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우리가 20년 넘게 섬기던 장로교회는 여러 면으로 안정이 되었지만 감리교회는 많이 힘들다고 했다.
아들이 감리교 목사가 된다는데 기왕이면 힘든 감리 교회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목사님께 말씀드리니 고맙게도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하신다.
1996년 1월 첫주 그 곳에 가니 모든 것이 낯설고 교인들은 너무 적고 썰렁했다.
성가대원도 10명 전후라 성가대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곧 성가대원이 되었다.
연세대학에서 종교 음악을 공부 한 “딸 같은 여자” 지휘자는 아마추어와는 확실히 달라 5년간 기도한 "메시야의 꿈을 이루어 줄것 같은 여자” 로 보였다.
2주후  갑자기 지휘자는 의논 할 것이 있다며 성가대원들을 모이라고 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 헨델 메시야 합창을 지휘 하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내년 6월 남편 학위가 끝나면 한국으로 들어가요. 한국 가기 전에 메시야를 꼭 지휘하고 싶어요.” 깜짝 발언을 했다. “성가대원 모두 합쳐 봐야 14-15명인데 어떻게 메시야를 부를 수 있단 말이죠? 란 말에 지휘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단념하는 눈치다.
모두 일어나려는 순간 나는 “간 큰 여자” 가 되어 "이 교회로 오기 전에 5년간 메시야 합창을 위해 기도 했어요.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아요. 어쩜 하나님께서 저를 이 교회로 보내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기도는 했지만 메시야를 지휘 할 분이 없었어요.
이제는 지휘자가 있는데 성가대원이 부족하네요. 메시야를 부르는데 감리교 교인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죠? 장로교회나 천주교 교인도 괜찮다면 제가 합창단원을 모아 보겠어요.
적어도 5-6명 많으면 10명 정도 도와 주실거에요.  저를 믿고 한번 맡겨 봐 주세요. 최선을 다 해보겠읍니다.”
성가대원들은 결국 못할 것이 뻔하지만 ”당돌한 여자”가 해볼테면 해 보라며 겨우 허락을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전혀 염려가 되지 않았다. 할렐루야!
곧 장로교회와 천주교에 할 만한 분들께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서 9 사람을 모았다. 목사님 내외분 까지 모두 27명이 되자 지휘자는 그만하면 됐다고 매주 한 번씩 연습을 시작했는데 “키가 작고 고추 처럼 매운 여자”는 열심히 잘도 가르쳐 주어 날로 일취월장하며 성가대원들도 차츰 자신 감이 들어서 기쁘게 연습에 임했다.
두어달 지났을 때 지휘자가 임신한 것을 알고 공연 날을 크리스마스 대신 추수 감사절로 앞 당기고 입덧을 하면서도 낮에는 몇 사람씩 모아 개인 지도를 하는 “지독한 여자” 의 열심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반주를 위해 쳄버 오케스트라도 구성이 되고 미국인 지휘자도 정해졌다.
배가 남산 만 해진 지휘자가 엘토 쏠로  장로교인이 쏘프라노 쏠로  테너와 베이스는 미국인이 맡았다.
목적으로는 입양아들의 대학 장학금을 마련하기로 정하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돛단배처럼 순항하며 잘 나아갔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메시야 공연에 올 청중들 특히 믿지 않는 한인들을 오게하는 것이었다. 한인들께 3번의 편지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편지 1호에 목적을 설명하는 초대의 글을 보냈다.
그런데 주일 예배 후 한 자매가 오더니 "입양 부모들은 여유가 있어서 입양을 했는데 구태여 장학금을 줄 필요가 있을까요?" 바로 그 때 떠오른 생각은 “다른 한인들도 똑 같은 생각을 하겠구나. 장학금이 왜 필요한지 설명을 해야겠군!"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의 손길이 분명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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