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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신과 인간’ ‘영성과 이성’을 놓고 기독교계와 격렬한 논쟁을 펼친 지독한 이성주의자며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교수(전 문화부 장관)가 2012년 3월 15일 하나님 품으로 간 큰딸 이민아 목사의 기도로 신앙의 길로 인도받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망막 손상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딸을 낫게 해 달라며 올린 기도가 기적처럼 현실이 되면서 이 교수는 깊은 탐구 끝에 예수를 최고의 지성으로 받아들였고,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이 교수를 주님은 품에 꼭 안아 주셨다.


그리고 이 교수는 딱정벌레의 껍질 뒤에 숨어 있는 말랑말랑한 알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기대반 설렘반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펴내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었다.


나의 작은 집이 방황의 길 끝에 있습니다./ 날 위해 노래를 불러 줘요. 집으로 갈 수 있게/ 믿음의 빛을 주어요./ 개미구멍만 한 내 집이 있기에/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탕자의 노래 中)


70여 년간 자신이 대적했던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함으로써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가며 느꼈던 날카로운 통찰력과 면면이 신앙의 함축적 언어를 통해 진정성 있게 표현된 시의 힘은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절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동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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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 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中 )


이어령 교수의 시를 읽고 있으면 그가 사도 바울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던 사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회심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어령 교수도 이와 같이 지극히 순결한 결단으로 모든 지식 중에 최고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고백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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