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테너라는 용어는 14세기 다성 음악에서 나왔다.

그전까지 단선율이던 음역이 2성부로 발전하면서 '테너'라고 불리던 아래 음역에 비해 위 음역을 부르던 콘트라 테노르(라틴어: Contra Tenor)에서 유래 하였다

 

또한 카운터 테너는 본래 중세 이후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던 과거 역사가 빚어낸 '비극'의 산물이기도 하다 비발디, 헨델 등 바로크 오페라 붐에 힘입어 17~18세기 오페라의 주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카스트라토(Castrato)가 19세기 초 법적으로 금지 되면서 이들 대신 카운터 테너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카스트라토가 거세라는 신체적 변화를 통해 사춘기 전의 음성을 유지한다면 카운터 테너는 사춘기 이후 가성을 훈련해 알토의 음역을 노래한다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비결을 팔세토(이탈리아어: falsetto)(가성)창법이다 팔세토는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소리로 호흡으로 받쳐서 소리를 머리로 띄워올린다(이것을 두성(頭聲)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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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넬리


카운터테너하면 영화 <파리넬리>가 떠오른다.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가수), 파리넬리가 트럼펫 연주자와 대결을 벌인다. '파리넬리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각자 지닌 기교와 음역을 넘어 절정에 달하자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트럼펫 연주자는 무릎을 꿇고 만다. 영화 속에 명장면이다.


  카운터테너란 19세기말까지 여성의 출입을 금했던 유럽교회에서 성가대의 여성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한 남성 카스트라토를 일컫는다. 비발디, 헨델 등 바로크 오페라 붐에 힘입어 17~8세기 오페라의 주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카스트라토. 19세기 초 법적으로 인권차원에서 이들의 활동이 금지되었다.

미성을 가진 소년들을 사춘기 전에 거세해 그 미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기때문이다.
현대에 카운터테너를 부활시킨 것은 영국의 앨프리드 델러(1912~1979)다.

 

그에 의해 거세라는 신체적 변화를 통하지 않고도 훈련을 통해 카운터테너의 음역을 노래할 수 있게 됐다. 바로 팔세토(가성) 창법에 의해서다. 팔세토 창법이란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소리로 호흡을 받쳐서 소리를 머리로 띄워 올리는 창법이다. 현재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빅3로는 독일의 <안드레아스 숄> 일본의 <브라이언 아사> 미국의 <데이비드 대니얼스> 등, 세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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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초이


우리나라에서도 카운터테너로 활동하는 성악가 루이스 초이를 만났다. 반갑게도 그는 대전출신이다. 아직은 우리나라 관중에게는 낯선 카운터테너란 장르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를 알리기 위해 앨범제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다한다. 그래서 얻은 닉네임은 '최전국'이다. 그는 대학시절 성악(테너)을 전공했다. 카운터테너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군 복무를 하던 중 우연히 TV에서 독일출신 카운터테너인 '안드레아스 숄'의 공연을 접하게 되면서 부터다.


대학시절 자신도 연습을 위해 자주 가성(팔세토)창법으로 소프라노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쉽고 편하게 부를 있다는 느낌을 느꼈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후 카운터테너에 대한 관심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 된다.


군에서 휴가를 얻어 테스트도 받는다. 결과는 카운터테너의 조건으로 최고란 평가를 듣는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 테너에서 카운터테너로 전향,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처음 카운터테너로서 무대에 섰을 때 그리 좋은 평가는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남자가 여자소리를 낸다는 것에 대한 반응은 2가지였다. 500명 관객 중 200명 정도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대해 놀라워 했고 300명은 대놓고 웃었다. 그리고 차마 웃지는 못하고 고개를 숙이시는 관객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면 ‘앞으로 내가 이것을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고 시인한다.


“저를 아끼는 교수님들은 '왜? 굳이!'라며 카운터테너로의 선택에 만류도 하셨지만 저는 10년후에는 판도가 달라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카운터테너를 많이 배출한 독일로의 유학을 결심하게 하였고 독일에서 유학하며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저는 카운터테너로 노래 할 때가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제가 자신감에 넘쳐 노래할 때 관객들도 큰 감동을 받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최경배>다. 연극배우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독일 유학 후, 한국에 들어오자 '나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루이스 초이로 개명도 했다.

 

카운터테너란 파격적인 장르에 어울리게 과감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도 접목했다. 결과는 팬들의 시선집중으로 나타났다. 성악가로서 그의 혁명은 성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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