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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딸의 이름을 그만 잊어버렸다. “어디 적어 둔 걸 봐야겠는데…. 생각이 안 나네요.”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백만국(90) 경기도 안산 샘골교회 원로목사에게 북에 두고 온 딸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백 목사는 1951년 1·4후퇴 때 혼자 남으로 내려왔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듬해 군목(軍牧)으로 전장에 나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분단의 비극’이다. 


‘전쟁의 공포’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피란 중 인민군이 자신의 흉골에 겨눴던 ‘다발총’의 서늘함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나 뮈서웠는지(‘무섭다’의 평안도 사투리) 몰라.” 


전방에서 주로 복무했던 그는 군인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포탄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전방에서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그저 병사들을 끌어안고 기도했지요.” 



매일 밤 평양 모란봉 올라가 성령간구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9일 앞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 5층 한국군목회(이사장 최명묵) 사무실에서 백창현(65) 사무총장의 소개로 백 목사를 만났다. 


1925년 4월생인 그는 망백(望百·91세·백세를 바라본다는 의미)이 무색할 만큼 정정했다. 


백 사무총장은 “6·25에 참전한 육군군목 1기 28명은 이미 모두 돌아가셨어요. 국내에 계시고, 건강하신 참전 군목은 몇 분 안 되세요. 52년 하반기 입대한 백 목사님은 6기”라며 백 목사를 소개했다. 

51년 2월부터 휴전되기 전인 53년 4월까지 270여명의 군목이 투입됐다. 


6개월 이상 참전한 군목 중 생존자는 30여명에 불과하다. 


백 목사는 여러 가지 질문에 비교적 또박또박 답했다. 


간간이 평안도 사투리 억양과 단어를 썼다. 


“평안도 영변이 제 고향입니다. 거기가 산이 많고 험해 핵시설이 있는 겁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어요. 먹고살 길이 막막해 평양에 갔어요.” 


그는 평양에서 감리교 교육기관 요한학교에서 신앙을 갖게 됐다. 


졸업 후 3년제인 성화신학교에 진학했다. 


“목회를 하려면 성령을 체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령 체험의 은혜를 받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모란봉에 올라갔어요. 밤새워 기도를 했어요. 근데 이게 피곤하기만 하고…. (미소) 그러다 부흥회에서 이경재 목사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어요. 신기했어요.” 


이 목사는 71년 감리교가 서울에 처음 세운 광희문교회 담임이 된 이다. 


백 목사는 이날 이후 평양 시내에서 노방전도를 했다. 


신학교 졸업 후 황해도 신막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다.


 “해방 후 북한 지역은 사실상 공산당 치하였어요. 첫 부임지 기차역에 내렸는데 인민군 정치보위부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절 보위부로 끌고 갑디다. 고문을 받는지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겁주는 거였죠.”


 보위부는 목회자의 활동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권총을 찬 보위부 인사가 수시로 교회에 와서 몇 시까지 보위부로 나오라고 호통을 쳤죠. 한번은 수요 예배를 시작하려고 알림 종을 치려는데 보위부 그 이의 겁박에 손이 움직여지지 않기도 했어요.” 



“전방에서 병사 안고 기도”


신앙 좋은 처자와 결혼, 50년 첫딸을 얻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해다. 피란 중에 개성에서 처자와 헤어졌다. 


“딸 이름만 지어주고 내려왔어요.”


 51년 1·4후퇴 피란길, 한밤에 인민군 부대와 맞닥뜨렸다. 


“말로만 듣던 다발총을 가슴팍에 들이댔어요.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절 살려주시려고 그랬는지 그 순간 하늘 위로 폭격기가 ‘윙’ 소리를 내며 날아갔어요. 

인민군들이 그 소리에 허겁지겁 전투 장비를 옮기고 여기저기로 몸을 숨겼죠. 그 틈에 저는 냅다 남으로, 남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전도사였던 그는 제주도에 한 교회에 있다 충남 안면도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북에 둔 가족 걱정이 계속됐다. 


"신학교 동기 중에 먼저 군목으로 입대한 친구가 있었어요. 저한테 군에 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군목이 되면 북한으로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아내와 딸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군목으로 지원했습니다."


백 목사는 자신의 군목 합격증과 공병학교 군인교회에서 찍었던 사진을 꺼냈다. 

20대 후반 다부진 청년이 거기 있었다. 


"전쟁터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나무를 자르고 풀을 베어 임시로 막사를 만들고, 조그마한 주먹밥에 소금을 쳐서 먹었어요." 


백 목사는 강원도 양구 등 5, 6군단 전방에 주로 있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제공한 사진 속 예배 장면에 대해 물었다. 


눈 쌓인 야외에서 장병들이 이동식 풍금 연주에 맞춰 찬송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허허" 웃었다. 

"예배 처소를 짓고 풍금을 연주하는 것은 평화로운 후방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방에서 예배는 상상하기 힘든 겁니다.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몰랐어요. 어린 병사들은 공포심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어요. 저는 그런 병사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안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켜 달라고 간구했어요." 


53년 7월 휴전이 됐다.


 250만명 이상의 사상자와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남긴 채. 

그는 남한에서 다른 여인을 만나 자식 셋을 뒀다. 


이후 북의 가족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게 언제나?('언제였나'의 평안도 사투리) 10여년 전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서 딸을 만났어요. 처는 숨지고." 그는 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정권의 끝이 올 것 같긴 한데…' 


백 목사를 만난 다음 날 자료검색 중 '남북 8·15 상봉, 유일한 목회자 백만국'이라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딸 이름이 '신숙(50)'이라고 돼 있었다. 

백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이 지으신 이름이 맞죠? 한자는 뭔가요?" 

그는 그제야 기억이 난 듯했다.


 "아…. 믿을 '신(信)'자에 숙녀(淑女)의 '숙'자일 거예요." 신실한 믿음을 바라는 맘으로 '신'자를 넣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67년까지 군목으로 복무한 뒤 중령으로 만기 제대했다.


 "군인은 규율로 병사들을 통제하지만 군목은 예수님 사랑으로 병사들을 보살피잖아요.

 

말썽을 일으키거나 문제가 있는 군인들을 제게 데리고 오더라고요. 한 군인은 민간인을 상대로 강도질을 계획했다가 저랑 예배드린 뒤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고백했어요. 그런 일이 많았죠." 

제대 후 경기도 화성 매성교회 등에서 30년 가까이 목회를 하다 96년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영어공부를 하고 일주일 3차례 서울 경복궁 등에서 영어 통역 봉사를 한다. 


"지난해까지는 몸이 정말 가뿐했는데 올해부터는 걷는 게 조금 불편해요. 그래도 즐거워요. 특히 통역 봉사하러 가면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그는 한국에서 누리는 것들에 감사했다.


 "62년 제가 미 군목학교에 유학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볼펜 한 자루조차 우리가 만들지 못했어요. 지금은 세계 도처에 한국제 휴대전화,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어요. 하나님이 특별한 축복을 주신 것 같아요." 


백 목사에게 북에 있는 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한숨을 토했다. 


백 목사는 북한 정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전쟁을 일으키고 인민들을 억압하는 정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을 해야 하지만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정권유지에 도움 주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원수'를 돕는 거죠. 저 정권의 끝이 언젠가 올 것 같긴 한데…." 

그의 비극,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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