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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영 집사
 <북가주 메시아 합창단원>


우리는 예수님 스타일

북가주 메시야 합창단
예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여자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오 오 우리는 예수님 스타일

남가주 메시야 합창단
예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여자
맘에 들어-- 따사로워--
오 오 우리는 예수님 스타일

자선 파티
나는 10여 년간 입양 가족들과 인연을 맺어온 터라 그 분들 사정을 좀 알고 있었다.
1971년 미국에 온지 한달만에 미국인들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미국인 의사가 "옆집에 사는 한국 입양아가 아주 귀엽다."고 했다.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그렇지! 미국에는 입양아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귀한 일이 아닌가?”
대학을 다닐 때 “별 볼일 없는 여자” 나는 부자 남편을 만나 줄리아드 같은 음악 학교를 세워 재능은 있어도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생각 했었는데 부자가 아닌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물거품이 돼버린 꿈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난 1986년 마침내 입양 가족을 피크닉에 초대하여 고마움의 표시로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귀한 아이들에게 태권도시범, 보물찾기와. 한글로 이름을 써주었다.
양부모님들은 어린이들 프로그램을 잘 도와 주시고 음악교사였던 두 분이 매년 예배를 위해 트럼펱을 연주해 주셨다.
그 우렁찬 연주에 새들과 산천초목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분들의 사랑과 정성은 아무도 따를 수 없었다. 피크닉을 시작한지 2-3년 후 피크닉의 보답으로 한국 고아원을 돕기 위해 자선 파티를 한다고 했다.
한국음식을 써브(Serve) 한다기에 300명분의 음식을 함께 준비 했다.
불고기, 잡채, 생선전, 빈대떡, 김치, 후식은 약밥으로 정하고 생선전 빈대떡은 미리 만들어서 냉동해 놓고 포기김치를 담그느라 김치 속을 만들었더니 스파케티 쏘스와 색갈이 똑 같다며 좋아한다.
마침 한국에서 유학 온 사촌동생의 Wife가 만든 약밥은 대추 밤 잣을 풍성히 넣은 명품인데 기꺼이 300명분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한없이 고마웠다.
미국인들이 약밥을 그 토록 좋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입맛에 맞으면 서양인들도 좋아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른 음식들도 모두 맛있게 되어 참석해 주신 한국인들은 물론 참석한 300명의 미국인들 모두 원더플(Wonderful)! 딜리셔스(Delicious)! 찬사가 끊이지 않자 양부모님들은 기쁨의 탄성과 함께 음식을 더 많이  더 열심히 써브했다.
준비를 철저히 완벽하고 절도 있게 불고기 굽는 일 빈대떡과 생선전을 지지는 일 잡채 만드는 일을 척척 도와 주셨다.
Dinner를 하던 옆방은 한국가구로 안방을 꾸며 전시하고 사촌 동생 가족이 한복을 입고나와 소개하고 한인 두 자매의 Violin과 Flute 이중주도 아주 훌륭했다.
88 올림픽 영화도 보여 주고 한국 소개 책자들도 나누어 주었다.
디너가 한창 진행 중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15-20명의 입양아들이 꽃다발을 주며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을 불러
주어서 내 일생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꽃다발을 받아야 할 분들은 바로 고마운 양 부모님들이 아닌가? 주객이 바뀐 것이다.
자녀들을 향한 열성과 사랑은 넘치고 넘쳤다.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친다고 매년 썸머 캠프도 열고 한국에서는 Tea Ceremony 를 많이 한다는데 가르쳐 달라고 해서 다도 책과 기구들을 구해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강의를 했더니 재미있다며 또 다시 해 달라고 한다.
붓글씨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달라면 붓을 많이 갖고 가서 아이들이 직접 써 보라고 했다.
무엇이든 도와 달라면 기꺼이 달려가곤 했지만 그분들의 수고와 사랑에 비할수는 없었다.
나의 생명을 송두리째 내어 준들 그분들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겠는가? 10여년을 그렇게 지나니 입양아들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했다며 아름다운 결혼사진과 예쁜 애기 사진을 귀한 선물로 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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