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21세기 찬송가'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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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서울시내 한 기독교 서점에서 성도들이 성경과 찬송가를 살펴보고 있다.


주요 교단장들이 새로운 찬송가를 만들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21세기 찬송가(새찬송가)’를 전면 포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수십억원의 헌금을 투입해 10년 만에 만든 찬송가가 보급된 지 6년 만에 외면당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 성스러운 찬송가, 이권 대상으로 추락

한국교회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합동찬송가’ ‘개편찬송가’ ‘새찬송가’ 등 3개의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따 라서 하나의 찬송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염원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찬송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던 한국찬송가위원회와 새찬송가위원회는 1981년 한국찬송가공회를 조직하고 83년 558곡이 수록된 ‘통일찬송가’를 내놓았다.
양 위원회 설립 주체가 교단이었던 만큼 한국찬송가공회에는 교단파송 이사들이 임원으로 활동했다.
찬송가 출판권은 대한기독교서회와 생명의말씀사에 있었는데 98년 생명의말씀사의 판권은 예장출판사로 이전됐다.
이번 사태의 배경은 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찬송가공회는 계약서와 달리 ‘통일찬송가’의 출판권을 일반출판사에도 허락했고 주요 교단은 지속적으로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다 2006년 11월 출시된 ‘21세기 찬송가’의 독점출판권이 흔들리면서 폭발했다.
한국찬송가공회가 계약서와 달리 성서원 등 4개 출판사에도 출판권을 허락한 것이다.
교단 파송 이사들이 매년 수십억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 앞에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예 장 합동 한 관계자는 “교단의 파송 이사가 한국찬송가공회 편에 서서 오히려 교단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총회에선 파송을 무효화하고 징계까지 내렸다”면서 “그러나 총회장 등 임원까지 지낸 파송 이사를 제재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 공교회성 탈피하려다가 문제 촉발

소 송이 난무하고 파송 이사가 소환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교단과 한국찬송가공회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 한국찬송가공회 공동회장이었던 이광선 황승기 목사는 교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협의체에 불과했던 공회의 법인 전환을 시도한다.
이 소식을 접한 예장 통합과 합동 기장 기감 기성 기침 등 주요 교단은 “독자적 세력화는 공교회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일제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광선 목사 등은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2008년 4월 충청남도에서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냈다.
이후 대한기독교서회와 예장출판사는 (재)한국찬송가공회와 4개 출판사에 출판금지가처분 신청과 저작권법 위반,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했다.
(재)한국찬송가공회는 찬송가 출판계약이 종료됐다며 악보 필름과 CD를 반환하라고 맞섰다.
양쪽의 힘겨루기는 한동안 실제 권한을 갖고 있는 (재)한국찬송가공회가 우세한 듯했다.
그러나 2011년 6월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의 판결은 찬송가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한 국 찬송가 작가들이 낸 소송에서 법원이 ‘법인격이 없는 사단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원 총회의 결의가 있어야 하는데 (재)한국찬송가공회는 이런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과거 한국찬송가공회로부터 저작권과 재산을 승계 받지 못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판결로 (재)한국찬송가공회는 음원사업자를 상대로 한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했으며, 대한기독교서회와 예장출판사를 상대로 한 고소사건에서도 ‘저작권리가 없으므로 고소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는다.
급기야 2012년 5월 ‘기본재산 출연 부존재’를 이유로 충청남도로부터 (재)한국찬송가공회의 재단법인 설립허가 취소 통보를 받는다.
정 지강 대한기독교서회 사장은 “재단법인은 말 그대로 재산을 기초로 할 때 설립이 가능하다”면서 “충청남도의 결정은 (재)한국찬송가공회가 재산을 승계 받은 듯 서류를 꾸며 법인 설립을 허가받았으므로 설립 원인에 중대한 하자가 있었기에 법인설립을 취소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찬송가와 관련된 한국교회의 상황은 3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숱한 소송으로 만신창이가 된 ‘21세기 찬송가’는 애물단지가 됐고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교회 성도들이 입게 될 상황이다.
새로운 찬송가는 (재)한국찬송가공회에 동참하지 않은 비법인 한국찬송가공회가 제작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착되기까지 수년간 여러 개의 찬송가를 병행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 법인 한국찬송가공회 서기 윤두태(의정부 가성교회) 목사는 “오는 9월 총회 전까지 저작권과 출판권에 전혀 문제가 없는 새로운 찬송가를 내놓을 것”이라며 “당분간 ‘21세기 찬송가’와 ‘통일찬송가’, 새로 제작되는 찬송가를 쓰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찬송가를 쓰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예 장 합동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연합기관을 이끄는 교회 지도자라면 사심(私心)을 버리고 반드시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며 “한국교회가 앞으로 잘못 자리 잡은 온정주의를 버리고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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