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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 산상수훈(山上垂訓)을 말씀하실 때 돈이 많아 세상 것을 누리는 이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또 사회의 기득권을 가지고 행세하는 이나, 수명이 길어서 장수하는 이를 ‘복 있는 사람’으로 언급하지도 않으셨다.


오직 하나님의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이가 복 있으며 그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선포하셨다(마5:6).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날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잔치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곳간이 항상 차고 넘쳐서 육체의 목마름이나 배고픔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부자의 육적 삶만 본다면, 실상 그의 영혼은 주리고 목마르다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하랴.


그런 반면에 부자의 집 문턱에서 빌어먹던 거지 나사로는 사람들의 눈에 주리고 목마른 비참한 자로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거지꼴을 보며 육신의 처지를 딱하게 여길 뿐, 내세를 준비한 그 영혼이 누리고 있는 신령한 영적 부유를 볼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부자와 거지가 모두 세상을 떠나 영혼의 때를 맞이하자, 진정 굶주리고 목마른 이가 누구였는지 하나님 앞에 명백히 드러났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는 육신의 때에 자기 영혼이 얼마나 주리고 목마른지 아는 사람, 곧 자신의 영적 사정에 밝은 사람이다.


자신의 영적 처지를 알아야 영혼의 때를 준비할 수 있다.


돈과 명예, 지식과 권세, 세상 문화를 누리는 것은 사람이 사는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육신을 마감하고 나면 이 땅에서 부유했건 가난했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오직 영혼의 때에 누리는 부유가 진정한 부유다.


따라서 육신의 때에 자기 영혼의 주림과 갈급함을 깨닫고, 영혼의 때를 준비하며 사는 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연세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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