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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전 목사



통계적으로 시계의 초침이 한 번 ‘똑딱’ 할 때 지구상에서 두 사람이 굶어 죽는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있다.


지금 그들은 육체의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는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이 끝나는 순간 그들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그들 안에 예수가 없어서 영적으로 죽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양식이 없는 것과 예수가 없는 것, 어느 것을 더 우선해서 해결할 것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많은 학자는 우선 양식을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만의 하나 그 양식을 먹여서 살려 놓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언제든지 예수를 먼저 전해야 한다.


예수를 주려는 정신을 가진 사람은 양식을 주려는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를 제쳐 놓고 양식을 먼저 주고 예수는 나중에 준다는 것은 옳지 않다.  양식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예수를 주는 사람이 어찌 양식을 주는 데 인색하겠는가.


그러나 ‘예수 없는 양식’은 박애주의에 이용될 뿐이다.  오직 ‘예수가 있는 양식’이 영육 간에 주리고 목마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성도에게는 항상 주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하나님의 의(義)를 먹고 마시려 몸부림치는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한다.


또 목사에게는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의(義)라는 자원이 항상 있어야 한다.


제자들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고 한 것처럼 예수만은 항상 줄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배고픔을 채울 양식보다 먼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예수가 있어야 한다고 진단하셨다.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와 그 의가 인간에게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육체적 환경의 불황보다 영적 불황부터 타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6:33).
<연세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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