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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꼰대"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나이많은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 입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대형교회 부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도중 동성애를 비판하는 성도들을 "꼰대"라고 조롱해 급기야는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대형교회는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분당우리교회(담임: 이찬수 목사) 이고 이교회 부목사는 삼일예배(수요예배)에서 설교를 통해 동성애를 비판하는 성도를 "꼰대"라고 지칭했던 것 입니다.


올해 초 이찬수 목사는 이곳 뉴비전교회에서 개최한 부흥회의 강사로 초청돼 참석자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는 자랑(?)스런 얘기를 필자는 들은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훌륭한 목사님과 동역하는 부목사의 설교가 저에게는 더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분당우리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교단 소속으로  제가 섬기고 있는 임마누엘 장로교회와 같은 교단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교단은 정통 보수신앙을 추구하며 동성애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교단입니다.


예장합동이 동성애를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남성과 여성의 경계선을 허물고 구원의 질서를 흔드는 인본주의 사상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교단의 신학교는 동성애자 및 동성애 옹호자의 신학교 입학을 거부하고 있음은 물론 교단헌법에는 동성애자가 요청하는 집례를 거부하고 추방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이 교단에 소속된 분당우리교회의 부목사가 동성애를 비판하는 성도들은 "꼰대" 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그 부목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몇년간 퀴어행사에 대한 반응, 기독교의 반응과 그것을 바라보는 반응을 찾아본 결과 대세는 이미 넘어갔다" 며 동성애 반대운동이 패배한 것 처럼 설교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는 동성애를 반대해 봤자 그 논란은 이미 동성애 찬성진영으로 넘어갔는데 동성애를 비난해 봤자 그것은 "꼰대" 들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는 논리를 펴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다수가 선택한 대로 따르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여러사람 속에 속해있는 개인이 어떤 개인행동을 하거나 의견을 표시할때 타당성을 고민하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르거나 동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군중심리"는 이를 두고 나온 말입니다.


군중심리가 작동하면 군중의 심리가 옳은지 그른지 헤아리지 않거나 설령 그르다고 판단해도 무시하기 일쑤 입니다.


군중속에 있는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한 채 우세한 집단 논리와 명분에 갇히게 되고, 때로는 자기 행동이 군중에 따돌림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식 체계에 자리한다고도 학자들은 말합니다.


마가복음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군중심리' 를 두려워해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앞에 "이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고 말한 뒤 예수를 유대인 무리에게 넘겨줍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문자속에 들어있는 진리가 정확무오하다는 말씀이란것도 믿습니다.


그러기에 앞서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남성과 여성의 경계선을 허문 동성애를 성경말씀에 비춰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옳다고 해도 성경말씀에 그르다고 했다면 그것은 그른것 입니다.
동성애 문제로 지금 이세상은 항상 뒤숭숭하고 논쟁은 끊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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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이 분열될 위기에 처한 교단도 있고 또 그런문제로 교단을 등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틈을 타서 사탄은 쉬지않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세상의 추세가 이러한데...


또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등등의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세상과 맞서는 상황이 된다 할지라도 동성애를 반대해야 합니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가 거룩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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