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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한국교회 대부분은 한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연속되는 시간을 굳이 잘라서 가는해 오는해로 구분짖는 것이 무슨의미가 있느냐고 송구영신을 부정적인(?) 견해를 펼치시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송구영신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한 간점선에서 우리들이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지난 한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새로 맞이하는 또 하나의 새해에도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담임목사님께서는 송구영신예배는 묵은해의 마지막 시간과 새해의 첫 시간을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예배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시기도 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는 자녀들과 함께 온가족이 같은 자리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개개인 마음속에 어떤 생각들이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지난 한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새로 맞이하는 또 하나의 새해에도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이와같은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한가지 더 보태자면 지난날들의 잘못된 습관과 나이들어 가면서 버리지 못하고 갖고있는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 쌓였던 마음의 찌꺼기들과 또 주위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워했거나 서먹서먹했던 관계를 깔끔하게 벗어나기를 바랬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우리들이 사탄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올해는 우리교회가 "선교의 해"로 선포하고 많은 선교사님들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실것도 당부하셨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문서선교의 자그마한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저로서는 마음속에서 자꾸 밀고 올라오는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해외에 나가지 않고 북가주지역에서 문서로 복음전파를 위해 나름 힘쓰고 있다지만 나는 과연 문서선교의 그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해 내고 있는가?


1993년 5월 크리스찬 타임스라는 신문 첫호를 발행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으셨다면 과연 오늘의 크리스찬 타임스가 가능했을까?


이런 물음들이 자꾸자꾸 꼬리를 물었습니다.


언급했듯이 아주 작지만 문서선교의 한부분을 자랑스럽게 맡겠다고 다짐해왔지만 그 길은 항상 험했습니다.


인력도, 재정도, 또 지혜도 턱없이 부족했었음을 실감했고 지금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기사쓰고 편집하며 땀흘려 신문을 배달하는 그 열심 외에는 어떤 다른 왕도가 없다는 것을 체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2018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에서 목사님은 "그러므로 가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인용하시면서 교회가 2019년을 "선교의 해"로 정하신 의미를 설명하시며 성도들이 여러가지로 동참해 주실것을 호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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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해외나 오지로 나가서 참담하고 어려웁고 힘든상황을 직접 부닥치진 않았지만 신문이라는 병기를 들고 작년보다는 더 많은 곳을 찾아가겠다는 저의 송구영신예배 결단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이사야서 48장 10절을 되뇌이며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불에서 택하였노라"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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