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인-01.jpg

글: 주정인 목사
<프리몬트 제일 장로교회>



‘걸리버 여행기’에 난쟁이들이 해변에 표류한 거인 걸리버를 묶어 놓고 연구한다.


 외모와 옷차림 그리고 다른 소유물은 대강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호주머니 속에서 나온 회중시계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토의 끝에 아마 이 거인이 섬기는 신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작가는 사람들이 시간에 종속되고, 시간의 노예가 되어 시간에 얽매여 사는 것을 풍자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다. 바빠 죽겠다.”하는 소리를 듣는다.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최소한 일 인 삼 역 이상을 하며 실제 바쁜 시간을 살기에 동일하게 입에서 이 말들을 내뺏는다. 


스케줄(Schedule)이란 영어가 한국말에서 새끼줄에서 나왔다는 농담을 한다. 우리는 새끼줄을 쳐 놓고 자기의 작은 영토 속에서 날마다 아침부터 꽉 짜인 시간표에 따라 개미처럼 숨 가쁘게 쫓기며 뛰어 다닌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바쁜가? 

다정한 친구의 만남을 거절할 만큼 왜 시간이 없다고 야단들인가?


우리는 돈 버는 일, 진학하는 일, 취직하고 승진하는 일, 학위를 따는 일, 매상을 올리는 일,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뛴다. 


이렇게 뛰다 보니 가로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본다. 

이렇게 죽을 똥 살 똥 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한다. 


그런데 이 열심,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모두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어리석게 스스로 속아 살고 있다. 


썩고, 부패하여 없어질 이 육신(flesh)곧 겉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나란 존재는 속사람인 내 영(spirit)이다.(롬7장) 


나의 육신은 단지 나를 아름답게 하나님 형상 닮아가게 하기 위해, 천국 준비를 위해 섬기라고 만들어진 나의 영혼을 위한 종속물, 도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오히려 적반하장이 되어 이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 열심히 충성, 봉사하고, 섬기다가 자신인 영혼을 죽이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사느냐”고 물으면 “80 을 산다.” 고들 대답한다.  


바른 대답은 우린 “한번을 산다.”(We live only once.) 마치 연어가 부화되었던 자기의 고향을 떠나 떠돌다 다시 교향에 돌아와 죽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한 인생’을 살다가 이 세상의 생을 끝내고 본향으로 간다. 


이것은 어린 아이도 아는 아주 간단한 진리이다. 


이 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를 말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말한다. 

곧 시간의 양을 말하지 않고 질을 말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비록 30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다 이루었다.” 하시고 삶의 승리의 개가를 불렀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아직은 얼마만큼 시간이 더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최악을 착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종지부를 찍으시면 모든 것을 마감하고 가야한다. 


운동경기에서 타임아웃(time out)을 시간을 중지 시킬 수 있으나 인생의 시간은 그럴 수 없이 마냥 최고의 속도로 달려간다. 


시간은 저축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가 없다. 


낭비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주는 곳도 없다.


그래서 아름다운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신 주님께서 시간에 얽매여 분주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세월을 아껴라’(엡5:16) 말씀을 하신다. 


여기 ‘아껴라’란 말은 좀 신학적 같지만 ‘시간을 대속하라’(redeeming the time)는 말이다. 

마치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구원해 주셨던 것 같이 우리가 시간에 속박된 삶에서, 종노릇하는 삶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세월’라는 뜻은 ‘중요한 시기’ 또는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모든 기회를 잡아라.(Making the most every opportunity.)는 말씀이시다.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시간에 얽매여 사는,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의 주인으로서 시간을 잘 사용하여 자신에게 유용한 기회를 삼으라는 말씀이다. 


일본의 한 다큐멘터리 영화 ‘가세키’라는 영화가 있다. 그 내용은 한 사람이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그가 어느 날 출장중에 거리에서 쓰러진다. 


병원으로 급히 옮겨 진단한 결과는 간암 말기로 3개월 시간부 인생이라는 것을 통보를 받았다. 

그는 “억울하다.” 뇌까리면서 울부짖고, 화를 낸다. 


시간이 지나 냉정을 찾은 그는 자기를 위해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씁씁하게 생을 마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3개월의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를 곰곰이 생각을 할 때 영화의 자막이 내린다.


우리는 시간부 인생이다. 시간이 없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어떻게 나머지 나의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목회자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