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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철 사관 (구세군 은혜한인교회)

 

허리를 기도로 치유 받으신 어르신이 그 주부터 다시 일을 나가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이 치유 하셨으니 더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시겠지” 라고 기대하였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동안 아파서 일을 못했으니 더 열심히 일을 하셨다.
원래 쉬실 수 있는 일요일도 일을 나가셨다.
너무나 실망이 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부교님은 나보다 더 화가 나셨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분을 내셨다.”
믿음은 오직 들음에서 남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로 치유 사역은 잘 하지 않았다.
대신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교회건물 사용에 한계가 있어서 사택에서 모임을 가졌다.
다행히 사택 아래층에 넓은 공간이 있어서 가구들을 치우니 모여서 성경 공부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아내는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모이기를 힘쓰니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부임했을 때와는 달리 예배에 감동이 있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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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성경공부 시간이었다.
그날도 다른 주와 똑같이 몇 사람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한 자매가 성경공부 방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모두 그 자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도 모르는 자매였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찾아 왔다고 하였다.
성경공부가 끝난 후 그 자매는 교회를 찾고 있는데 아버지가 이 교회로 가보라고 추천해서 왔다고 하였다.
나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아버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주 침례교회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 안수 집사님이 아버님 이라고 하셨다.
대부분 자신의 교회로 전도를 하거나 인도를 하는데 특이하게 우리 교회를 추천해주셨다.
새로 오신 사관님이 젊고 말씀이 좋으니 많은 신앙의 발전이 있을 거라고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하셨다.
나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었다.
현재 섬기는 교회가 없는지 물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영혼 구원이지 성도의 많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가 둘로 나누어지면서 많은 아픔을 겪은 후였다.
한동안 교회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하였다.
기도를 해주었다. 주일날이 되었다.
온가족이 예배에 참석을 하였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어린 두 아들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남편은 지난주 혼자 예배를 드린 후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교회를 떠난 분이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남편이 먼저 교회를 방문해서 살펴본 후 아내에게 개척교회 수준이지만 말씀은 좋다고 이야길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내가 성경공부에 참석하여 다시 한 번 확인을 한 것이다.
교회를 정하기에 앞서서 이처럼 기도하며 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부는 다른 교회를 다니지 않고 구세군 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날부터 교회에 충성을 다하였다.
다른 많은 분들이 도전을 받았다.
한 나이 많으신 집사님의 아들 동부인도 교회에 출석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믿음은 없었지만 교회 안 나오면 아이들을 안 봐주신다는 부모님의 협박에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아주 심한 청년이었다.
믿음은 없어도 사람들과의 교제를 좋아하고 재미있는 분이었다.
참 친근감 있게 대해주셔서 금방 정이 갔다.
부인도 너무 좋은 분이었다.
여기저기 앵커리지 구경을 시켜주었다.
특별히 도시 가운데 있는 산위에 있는 전망대로 데려갔는데 이날 이후로 난 이곳을 자주 찾았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도시 전체가 다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알라스카의 산은 추워서 그런지 지대가 높은 곳은 큰 나무가 없고 작은 나무뿐이었다.
산위 언덕위에 벤치가 하나 있었다.
도시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난 이곳에 앉아서 이 도시를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날 이후로 자주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렸다.
양팔을 뻗어 앵커리지 도시를 향한 후 “주님 이 산지를 나에게 주시 옵소서” 라고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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