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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몇 번이나 할까? 누구든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그 분도 거짓말을 하셨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세기 18:12-14)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찾아 와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만 은밀히 전했는데 사라가 엿들은 것이었다. 이에 사라는 자신과 아브라함이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성경은 ‘사라는 여성들만이 하는 월경이 이미 중단된 지 오래였다’고 말한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늙었고 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 내가 어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오?”
이를 이중적 절망이라 부른다. 자신만 안 된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도 남의 이야기까지 끌어들인다.
사람의 본성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라의 구체적인 말과 달리 하나님은 중요한 말 한마디를 생략해 버린다.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했던 말(“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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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놓고 한 신학자는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라의 한마디를 생략해 거짓말(?)의 올가미를 써야 했을까?
해답은 하나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 작은 한마디에라도 아브라함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통찰!
어떤 목사님이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던 중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더 큰 목회를 하지 않았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을 원망한 일도 있노라고’ 목사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순간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모든 거짓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하고 싶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픈 마음이었음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한 결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자에게는 엄청난 아픔이었고 깊은 상처였다.
사모는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많은 갈등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대화부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화부족이 아니라 지혜로운 대화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거짓말” 옳고 그름의 신학적 논쟁을 떠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
남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라면 굳이 옮겨 놓지 않았던 하나님의 작은 ‘배려’가 사랑의 의미를 또 다시 깨우쳐 주고 있다.

<하이패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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