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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서 목사

<방주선교교회>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에 이어서 한국교회의 큰 별이었던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지난 2일 오전 8시40분에 소천 하셨습니다.
그 전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두 차례 뇌혈관 수술을 받으셨지만 소용없이 2일 오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66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간암으로 인해 이미 7차례 이상 수술을 받으시고도 중단 없이 목회사역을 해오셨고, 고통스러운 신장 혈액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받으면서도 주일강단을 쉬지 않으실 정도로 복음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이셨던 어른이시라 더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가정교회 사역자들에게는 최영기 목사님의 대표저서인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목회”를 두란노서원에서 출간함으로써 가정교회 사역전파에 크게 기여를 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목회와 신학과 같은 월간 기독교잡지에 가정교회 특집을 공정하게 다뤄줌으로써 이단시비가 있을 때에 가정교회 사역의 진실한 모습과 성경적인 배경을 널리 알리는데 힘이 되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들은 바로는, 부교역자들에게도 종종 가정교회 목장사역에 대해 배워서 순모임이나 순장교육에 반영하라고 언급하셨다고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처음으로 한국 교회에 제자훈련이라는 다소 혁신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전파할 때도, 기존 전통 교회로부터 이단 시비와 함께 핍박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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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목사님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도에 관한 외국 도서들을 번역해서 보급하며 옥목사님을 도왔던 분입니다.
오순절과 순복음 교회들이 성령의 강력한 역사들을 체험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도 역시 이단 시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장로교 목사로서 하목사님은 목회 사역의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를 각오로, 성령 사역의 중요성을 보수 복음주의 교단 전체에 확산 시키는 일에 앞장서시기도 했습니다.
  하목사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도,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성공회 신부)님도 다 소천하셨지만, 두 분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시다 주님께로 가셨습니다.
절친이셨던 옥 목사님과도 만나실테니 그리 외롭지만은 않으실 겁니다. 저는 생전에 직접 만나 뵙고 교제를 한 적도 없고, 지도를 받은 적도 없지만, 하목사님의 저서를 대부분 읽고,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간접적인 멘토링을 받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한 번쯤 직접 뵙고 차라도 한 잔 나누며, 귀한 조언도 받고 교제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겠지 싶었기에 더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믿음의 거장들이 한 분씩 한 분씩 우리를 떠나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ACT 비전교회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는 교회 개척 철학에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한국 교회 갱신이나 출판문화, 선교와 복음전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거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유머러스한 조사처럼 천국에 가서도 일하시다가 예수님의 꾸중을 들을지도 모를 하목사님의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만이 오늘날 병들어가고 있는 교회들을 살릴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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