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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서 목사

<방주선교교회>

 

한국에서 마지막 안식월을 보내면서 수많은 촛불 집회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약자들의 선한 몸부림이고, 자신들의 뜻을 알리고자하는 절규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집회가 끝난 다음 날까지 길거리에 늘어붙은 양초 촛농과 쓰레기들을 치우시는 환경 미화원들을 보면서, 저 젊은이들은 촛불을 들고 모여 노래 부르며 구호를 외치는 저 순간을 그저 목말라하는 축제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삼선개헌 반대를 외치며 최루탄을 피해 도망 다니던 제 자신의 대학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촛불하면 제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님이 밤마다 장독대에서 맑은 물 한 대접을 떠놓고 흰 양촛불을 켜 놓으신 채 두 손을 빌면서 기도하시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어느 날은 궁금해서 몰래 숨어서 어머님의 기도를 들어 보았는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보면 추위도 무릎 쓰고 정성껏 기도하시는 어머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저절로 나곤 했습니다.
촛불에는 촛불을 밝힌 사람의 간절한 목마름과 기다림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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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혹은 대림절)은 영어로는 Advent라고 하는데, 곧 도착한다는 의미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성탄절 전까지의 약 한 달간, 즉 네 번의 주일을 기독교에서는 대강절 주일로 섬겨왔습니다.
주님의 초림, 즉 성육신을 고대하는 과거적인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미래적인 의미에서 지난 2천여 년 동안 교회의 절기로 자리를 잡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 가운데 주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신앙이 회복되길 소원하는 열망이 담겨져 있는 절기였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서 네 개의 촛불을 차례로 매주일 키곤 했습니다.
첫 번째 촛불은 기다림(Anticipate)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고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 고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오셔서 절망과 고난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는 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촛불은 갈급함(Desire)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갈급함은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과거와 현재의 죄와 허물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회개하며 주님을 목말라하는 백성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세 번째 촛불은 나눔과 베품(Vacate)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만을 채우려고 했던 삶에서 떠나 자신을 비우고 연약한 자, 병든 자, 없는 자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 삶입니다. 주님을 맞기 전에 주님의 마음을 먼저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촛불은 인내와 용납(Endure)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계속되지만 주님은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오시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되고 근심도 됩니다.
갈등은 관계에서도 지속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원수는 논쟁과 증오, 대립과 분열로 몰고 갑니다.
마지막 촛불은 성탄 주일에 밝히는데, 승리(Triumph)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기다림과 갈급함과 나눔과 인내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주님은 우리의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승리를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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