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미-01.jpg

윤은미 집사 (방송작가)


요즘 들어 대낮에 사람들 많은 네거리를 지날 때면 이전과는 다른 불안이 밀려듭니다.
더구나 남루한 행색을 한 남자가 주변에 있기라도 하면 불안은 두려움으로 변해서 상대방 기분을 배려할 사이도 없이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지요.
이것이 비단 필자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에 언론을 통해 ‘묻지마 범죄’라는 충격적인 사건들 탓에 생긴 새로운 길거리 풍속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명 ‘묻지마 범죄’의 공통점, 그 출발이 사소한 일이라는 점, 발생 장소가 지금까지 강력 범죄 발생 장소와 달리 지하철역, 대로변 등 사람들이 많은 장소며, 돌발적인 발생 탓에 피해자 개인들이 대비를 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순간적 충동이 극단적 행동으로 나타난, 감정 조절 장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묻지마 범죄’의 공포가 휩쓴 일본에서는 그 명칭이 ‘토오리마지켄’ 즉 ‘지나가는 마귀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상을 종합하면 결국 ‘묻지마 범죄’는 악한 영에 영향 받는 인간의 ‘죄성’과 깊이 연관한 사건인 듯합니다.
서울장신대학교 김호경 교수(신약학)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치 않는 인간의 죄”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의 죄성을 심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권력이다, 인간에겐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감사만이 있어야 하나 스스로 의인의 자리에 올라 남을 정죄하며 은혜를 망각한다.” 그 탓에 타인에 대한 긍휼을 상실하고 ‘정죄와 분리’만이 범람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김 교수는 주장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6:42).
‘묻지마 범죄’의 범인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고립된 생활 속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이라고 하니, 끔찍한 범행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들이 세상에서 정죄당하며 차별받아 온 것은 자명한 사실이겠지요.
그렇다면 그들 속에도 ‘나의 현재 불행은 나를 왕따 시킨 다른 사람의 탓’이라는 세상에 대한 정죄함이 쌓이고 그 결과 세상을 자기로부터 분리했고 그 때문에 쌓인 분노가 세상 사람들에 대한 끔찍한 폭력으로 표출된 것 아닐까요? 결국 하나님의 절대성을 잃어버린 인간 죄성의 악순환이 현재 위기의 요인인 셈입니다.
이 끔찍한 불행을 막으려고 세상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 해결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의 죄성 탓에 생긴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삶의 무기인 ‘믿음의 기도’만이 그 답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임을 믿고 인간의 죄성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소망합니다.
“하나님, 내가 피조물임을 진심으로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피조물이 지닌 소중함을 타인들 속에서 순간마다 발견하게 하소서.”
이 기도가 필자와 하나님을 믿는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목회자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