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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과연 우월한가? 그렇다. 확실히 우월하다.
여성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단 한가지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질이 다르다.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하와는 갈비뼈로 지어졌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흙은 무기물질이었고 갈빗대는 엄연한 유기물질이었다. ‘1차 가공’을 거친 더 고급 소재였던 셈이다.
더더구나 신제품(?)은 항상 뒤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보다 염색체 수도 하나가 모자란다.
때문에 첨단 재료일수록 취급주의가 더 필요하다. 한 자매가 결혼을 했다.
부부싸움 끝에 친정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화가 난 남편은 남편대로 이번 기회는 버릇을 고쳐놓아야겠다고 별렀다.
친정에 돌아온 딸을 보는 부모 마음도 편치 않았다. 며칠을 쉬게 한 다음 딸을 달래 돌려보내며 친정아버지가 딸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두말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는 즉시 사위한테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편지부터 내밀었다. 신랑이 편지를 받아들자 마자 기겁을 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다. “취급주의: 깨지기 쉬움”
베드로는 아내를 “연약한 그릇”(벧전 3:7) 이라고 표현했다.
아내들은 실제로 연약하기 짝이 없다. 마치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다. 한번 깨지고 나면 다시 붙여 쓸 수 없다.
베드로는 이어서 “귀히 여기라”고 한다. 왜?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취급주의를 어기는 것이다.
아내가 허리가 아파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일이다. 수술비가 적지 않을 것이란 짐작을 하고 아내한테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여보, 왜 신부는 애프터서비스를 안 해 주지?” 이 말이 장인어른한테 전달되었고 돌아온 답은 너무 간단하고 단호했다. “사용자 부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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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왜 하필이면 갈비뼈였을까?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만약 머리로 만들었다면 여성들은 남자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발뼈로 만들었다면 발에 밟혔을 것이다. 갈빗대로 만드심으로 남편의 가슴에 안겼을 때 평안을 누리도록 한 것이다.
이래서 유대인 랍비들은 “남자는 그의 옆구리로부터 나온 갈빗대를 갖지 못하는 동안은 휴식할 수 없고 여자는 그녀가 나온 남자의 팔 밑에 있지 않으면 휴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의학용어에 ‘지체 자각증상’이라는 게 있다. 불의의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이 마치 그 팔이나 다리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손끝이 아프다거나 발바닥이 간지럽다고 호소하는 것 같은 기이한 증상을 말한다.
이를 일러 팬텀 페노미나(Phantom Phenomina)라 부르고 많은 남성들이 ‘펜텀 페노미나’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한다.
즉 하나님은 아담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가장 예민하고 소중한 부분인 그 가슴의 갈빗대를 뽑아다가 여자를 만드셨다.
그래서 남자들은 지금까지도 여자가 눈물만 글썽거려도 가슴이 저려서 견디지를 못하고 쉬 무릎을 꿇고 만다는 것이다.
아담은 이 모든 것을 미리 알아서일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고 고백한다.
즉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란 말은 내 존재구조가 곧 여자의 존재구조라는 고백이다.
이 사실을 일찍 깨달은 아담이야말로 남자 중 남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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