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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철 사관(구세군 은혜한인교회)

 

그러다 보니 이상한 목회자도 등장했다.
한 교회는 (그냥 교회라고 호칭 사용) 노인들을 돌보아 주면서 회원제로 운영한다.
즉 일정한 회비를 받고 회비를 낸 사람들만 도와주었다. 같은 교인이라 할지라도 회비를 내지 않으면 안도와주니 모두 억지로 회비를 내었다.
그리고 모든 서류를 자신의 주소지로 해놓고 십일조를 강제로 때갔다.
교회 연합회에서는 이 목회자를 인정하지 않았고 교회도 회원교회로 가입시키지 않았으나 일반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체 그저 교회가 다 똑같은 줄 안다.
그러다 보니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도움을 받았지만 보통사람들은 교회를 욕했다. 돈 밖에 모르는 곳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다 보니 그냥 도와주는 구세군 교회에 더 많이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러한 도움이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는 경쟁이 되다보니 노인들은 교회를 신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접을 받고 교회를 나가 주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변화가 필요했다. 일단은 예배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때 시작한 예배 형식이 지금까지 드려오고 있다.
예배를 시작하면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0분정도 찬양을 드렸지만 지금은 말씀시간을 늘리고 찬양을 조금 줄여서 부르고 있다. 처음 찬양인도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내가 직접 인도 했다.
기타를 들고 찬양을 인도할 때의 사람들은 반응이 없었다.
젊은 분들은 좋아했지만 조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반응이 좋지 않았다. 모르는 찬양을 부르는 것도 싫었고 그동안 단순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던 예배에 변화를 주는 것도 싫어했다. 찬양 도중에 큰소리를 내는 분도 있었다.
“모르는 찬양 말고 찬송가 합시다. 찬송가” 당황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입을 열기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래서 쉬운 찬양으로 4곡을 선정했다.
그리고는 같은 곡을 매주 반복해서 불렀다.
찬양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불렀다.
새로운 신곡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찬양을 부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같은 곡을 한 달 동안 불렀다.
처음에는 안 따라 부르던 찬양을 매주 같은 곡으로 부르다 보니 마지막 주가 될 때쯤이면 찬양을 따라 부리기 시작했다.
예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찬송가와 복음 송을 섞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역시 같은 곡을 한 달 내내 불렀다.
조끔씩 찬양의 맛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때 교회 성가대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은 지휘자와 반주자의 문제였다. 아직 개척교회 수준이었기에 모든 것이 열악했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성가대가 있었고 지휘자가 있었다.
그런데 몇 주 뒤에 알게 된 것은 지휘자가 우리 교회 성도가 아닌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는 분이셨다.
이웃교회 장로교회에서 지휘를 하고 계신 분이셨는데 우리교회가 오후에 예배를 드리는 관계로 오전에는 본 교회를 섬기시고 오후에는 성가대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두 교회를 섬기고 계셨다.

좋은 눈으로 바라보면 참 좋으신 분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당시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휘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이기에 영적으로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교회를 섬기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한 반주자는 그분의 딸이었다. 당시 어린 소녀였지만 그 아이역시 아버지를 따라서 두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내 눈에는 열심히 두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분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곡을 부르고 계셨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분이 만드신 모든 곡은 단조를 사용한 슬픈 가락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안한 표현이지만 찬양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세상적인 느낌이 너무 많이 났다.
그런데 성가대는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딸의 사례비까지 지출되고 있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만 처음 목회를 시작하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다.
분위기상 그동안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드린 그분들을 갑자기 내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들 스스로 본 교회만 섬기겠노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런데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는 우리가 그분들을 반갑게 맞아 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하셨다.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라 대접받는 것을 좋아 하셨던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반주자였다.
교회 집사님 한분이 그 교회로 교회 차를 가지고 가서 이 학생 반주자를 픽업해 왔다. 당장 반주자가 없어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전혀 마음에 기쁨이 있지 않았다.
기도를 하였다. 얼마 후 한 청년이 한국에서 소개받은 자매와 결혼을 하였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반주를 하던 자매였다.
반주자 문제도 이렇게 하나님은 해결해 주셨다.
그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교인들은 인간적인 정을 이야기 하셨지만 본 교회 반주자가 오셨는데 다른 교회 교인을 매주 데리고 오는 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은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나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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