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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순호 목사

어찌해서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가 더 그리워질까? 

엄마의 치마 자락을 붙잡고 떨어지면 죽는줄 아는 나이도 아닌데, 장난감 사 달라고 징징 거리는 시기도 지났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참 사랑과 애틋한 정을 맛보지 못하고 실망이 쌓이게 되자 대가 없는 희생과  사랑을 퍼 부어 준 엄마가  더 그리워 지는 것이리라.

오늘 내가 이 만큼이라도 된 것은 엄마의 희생이 있었고 그 엄마에게서 받은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태중에서 잉태 될 때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해 주신 엄마, 엄마 자신은 시간이 가면서 앉고 서고 눕고 일 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얼굴이 검버섯으로 덮이지만 사랑의 열매인 한 아기가 자신의 분신으로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며 감수하신 엄마, 나는 배웠다. 

한 생명이 자라려면 누구인가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                                                                                                        
나는 태어나면서 부터 약골이되어 지나가는 감기는 물론 열병 장질부사 저 혈압으로 아픈 날이 너무도 많았다. 

오죽하면 학교 문 까지 엄마가 업고 데려다 주었을까.

가슴 아픈 일은 이제 열살을 막 넘긴 나를  친척 집에 맡기고  멀리 떠났을 때 그 마음은 얼마나 아팟을까!  

떨어져 있는 아들도 엄마를 자나 깨나 그리워 했지 만 엄마의 가슴은 타 들어갔을 것이다.
몇년 후에 만났을 때 엄마의 기쁨은 잠깐이고 다른 걱정이 생겼다.

즉 나는 이상한 애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하라고 하면 나가서 동네 애들과 싸워서 얻어 터지고 코피를 흘리며 들어오기 일수이고  때로는 남의 애를 무지하게 때려 그 부모가 찾아와 항의를 하니 엄마의 마음은 멍이 들어 갈수 밖에 없었고  내 별명은 망나니였다. 

남들은 나를  멀리하고 피하지만 그럴 수록 엄마는 나를 끌어 안고 울며  사람 구실 하라고 애원했지만 나는 그 눈물에 설득 당할 애가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간다고 나간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날 부터 사방으로 찾아 헤매기를 만 3년이나 걸렸다.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셋은  네살 안에 홍역으로 죽고 하나는 6.25 때  폭격에 죽었고 하나는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엄마는 사는 것이 아니고 목숨만 붙어 있었단다.

월남하신 엄마는 어느날, 충남 논산에 있는 반공 포로수용소에 내가 있을수도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무조건 그곳을  찾아 오셨다가 극적으로  만났다.

4년 만이다. 
포로 수용소가 어러곳에 있었고 논산에만도 수 만명의 포로들이 여러 수용소에 나뉘어 있었다.

 4중 철망과 사방에 기관총이 장탄 되어있고 삼엄한 경비속에 면회란 상상도 못하는 곳에서 극적으로 몇초간 만날수 있었다. 

엄마는 전연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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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줄었고 등은 구부러지고 머리는 반백이고 그렇게 곱게  얼굴에는 주름살이 너무도 크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자식이 없어졌을 때 찾을 때 까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찾아내는 엄마의 사랑과 끈기. 

그 드넓은 수용소에 있을지 없을지 알 수도 없는 아들을 찾겠다고 생계도 잊은채 매일출근하듯 와서 찾아 헤매던 그 집념.

나는 엄마에게서 삶의 철학을 배웠다. 

즉 어디가나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다.

그 비유인즉 어느 날 까마귀가 까치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은 나 만 보면 돌을 던지고 쫓아내느냐? 

왜  까치인 너를 보면 환영하느냐?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 하자 ‘그래 그 비결은 네 목소리를 바꾸는거야! 꽉 꽉 하는 네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안 좋아 싫어져, 나는 각 각 각 하며 꼬리를 흔드는 거야! 그러면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오겠네, 하고 좋아해, 그러니 네 목소리를 바꾸 라’고 했단다. 

맞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면  칭찬 받으며 살 수 있다고 했다. 

내 평생 어느 분의 가르침 보다 이 교훈이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엄마는 천둥소리는 못 들어도 애기 우는 소리는 듣는다’는 말이 있다.  

한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과 사랑을 주면서 기뻐했던 엄마, 그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고자 할 때는 이미 옆에 계시지 않으니 더 엄마가 보고 싶고 더 그리워진다. 

살아계실 때 효도 못한 죄를 고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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