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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순호 목사
<S.V 노인선교회 회장>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설날, 예쁜 옷 입고 새 신 신고 어른들을 찾아가서 이마를 땅에 대고 “건강하시고 장수 하세요!” 하고 큰절을 하면 절을 받은 어른은 미리 준비한 세배돈을 내밀면서 “착하다, 커서 큰 사람이 되어라” 하시던 덕담의 말씀은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엊 그제 같이  되 살아나서 지금도 설날이 되면 마음이 설레인다.

   양력 설 때에는 미국화 된 자녀들과 같이 조용히 음식을 나누고 음력 설이면 아직도 이민 일세 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을 나누고 세배돈도 건네며 어려웠던 한해를 돌아보고  내일의 꿈을 펼친다.

S 동창회가 설을 기해서 연말에  K식당에 모이게 되자 머리가 희끗 희끗한 친구들이 만나면서 부터 걸죽한 말이 튀어나온다. 

야, 전화 좀 해라, 너 형님에게 세배하려 안오냐?

 네 머리에 파리가 앉았다가 낙성하겠다. 
웃기네 남의 말 하듯하네 등등. 

그러다가 술잔이 돌아가면 와이담을 동반한 농담이 튀어 나오고 코믹한 말 잔치로 천정이 날아갈듯  웃어 제낀다. 

누가 그렇게 재미있는 말 들을 잘 만들어 내는지 모든 고민이 눈 녹듯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누구의 말 처럼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린 것 갔다.
매일 이런 모임을 만들 수 없을까? 

그 옛날 교복에  교모를 쓰고  많은 책이 든 가방을  어깨가 찌그러지도록 (백팩이 없었으니) 들고 학교에 갔다가 수업이 끝나자 바로 도서관으로 직행하다보니 친구들과 정답게 지내지 못하다가 지금은 은퇴한 노인이 되어 미국에서 아무 부담이 없이 자유롭게 만나니 너무도 좋다. 

화제는 자연히 학교로 돌아가 유난히 학생들을 사랑한 선생님의 미담들, 담배피우다 걸려서 어머님이 학교에 찾아가 우리아들 살려달라고 애원한 이야기, 사랑의 눈이 뜰 때라 예쁜 여학생을 따라 다니다가 태권도 선수인 오빠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일, 다른 학교 애들과 패 싸움 하다 파출소에 끌려갔던 일 등 등, 끝이 없다.

학창 때 이야기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 자연히 근래 친구들의 근황이 수면위로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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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00가 다음주에 결혼 50주년에 우리를 초청했으니 다 가서 잘 먹어주자, 이00의 아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한인타운으로 옮기는데 많이 가서 축하하자. 

박 00는 위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몇일전에 병 문안 갔더니 너희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자꾸 울더라. 

좋은 친군데.

정00의 아내는 계단에서 넘어져 히프 뼈가 부러져  집에 누워 있어, 참 안되었더라, 나이들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해. 

신00 는 한국 아들집에 가서 자다가 그대로  갔대. 너무도 허무해. 등등, 좋고 나쁜 소식이 교차된다.

 늘 조용한 홍00는 차분하게 말 문을 열었다.

얼마전 부터 폐에 이상이 있어 여러가지 검사를 거쳐서 내린 결론은 페암이래, 다행히 초기니까  우선 담배를 끊고  약물 치료를 하며 두고 보잔다. 

지금까지는 암이나 죽음은 남의 일로 생각했는데 자신이 암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단다. 미국에 와서 죽도록 고생을 하고 이제 살만한데 지금 떠나기는 너무도 억울해. 
더욱 아들놈이 이혼하면서 손자 손녀를 자기에게 맡겼는데, 자기가 죽으면 그 애들이  어떻게 될지 불쌍해.  
오래 살아야 한단다. 

더욱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금까지 남에게 좋은 일 한적이 별로 없는데, 만일에  좀 더 살면 진짜 선행을 하고 싶단다. 

더욱 아내에게 너무 고생 만 시켰는데 이제부터는 잘 할 기회를 만들겠다고. 그래서 아내에게 앞으로 말 잘 듣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봉사하는 일을 시작했단다. 

같은 아파트 건물에  외로운 한국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야. 

매일 아침  전화로 인사를 드리며 그분들이 필요한 것을 돕는다고.  
병원, 약국, 그로서리 가는 것은 물론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으며 사랑을 나누다 보니 우선 부부간의 정이 더 두터워지고 이웃 노인들의 얼굴이 환해지고  더 재미 있는 일은 자기의 병이 호전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마누라 소원대로  교회도 나간단다.

그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순식간에 숙연해지고 술 기운이 싹 가셨다. 

모두가 그 친구의 회복을 빌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도 건강할 때 무엇인가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지! 

오는 설 날부터!  오늘 모였던 친구들은 나와 같은 마음을 다 가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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