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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배 목사



장경철 교수가 쓴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잘못된 상대방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사랑의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대상과 매력의 문제라고 생각할 뿐 훈련과 연습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저희 둘째 아이가 학교 수업시간에 그려온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화가 나 있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상황에 대한 상상의 그림을 그리라고 했었는데 딸 아이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아빠의 반응을 상상하며 그렸고 그 그림은 5살짜리 아이에게 투영된 평소의 아빠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웃어주고, 친구같은 아빠보단 늘 무섭고, 엄격하고, 화를 자주 낸 제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게 아이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구나.’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가족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실제적 훈련과 연습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아이에게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주변의 이웃에게도 사랑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랑이 매력의 대상의 문제인가요?  아님 사랑하지 못하고 훈련하지도 연습하지도 않는 나의 문제인가요?  원죄를 가진 인간의 여러 가지 증거중에 하나는 남의 탓을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이브가 선악과를 자기에게 주었다며 이브에게 핑계를 대었듯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거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려 버립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그가 매력이없기 때문이라고, 그 사람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라며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들을 열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이유와 조건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자격을 따지자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롬3:10,23)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분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자격없는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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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은 피상적, 감상적이지 않았고 구체적이고 실존적이고 책임지는 사랑이였습니다.
이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겐 사랑할 대상의 선택권이 없어졌습니다.


성도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이여야 합니다.
그 사랑을 거대한 담론으로만 말하지 않고 정답으로만 알고 있지 말고 외롭고 슬퍼하는 이웃에게 흘러 보내는 사랑, 행하는 사랑이 되도록 연습합시다.


이웃을 긍휼히 여겨 내것을 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댓가를 지불하는 사람, 책임있는 사람들이 됩시다.


사랑의 메신저가 됩시다.
그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우리가 살 수있는 길입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임마누엘 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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