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30184247593.jpg

신태환 목사



로버트 로젠달이라는 하버드 대학의 동물학자 한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동물학자이기 때문에 들쥐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서 200마리의 들쥐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3개월 세계여행 겸 여름 휴가를 떠나면서 아무생각 없이 200마리의 들쥐중 50마리만 골라서 그 들쥐들의 머리에 흰 페인트를 조금씩 칠해주고는 떠났습니다.


그 후에 그 집에 남아서 들쥐를 키우던 사육사들은 왜 주인이 떠나면서 200마리 중 50마리만 골라서 머리에 흰 페인트를 칠을 했는지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표시해 놓은 이 50마리는 품종이 좋은 것이거나 , 머리가 좀 뛰어나고 영리한 것이거나 하여튼 좀 다른 쥐들이겠지' 하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3개월 동안 키웠습니다.


3개월 후에 주인이 돌아와 보니 들쥐들이 달라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똑같은 들쥐들이었는데 머리에 흰 페인트가 칠해진 50마리의 들쥐가 다른 들쥐들보다 더 발육이 잘되어 있었고, 훈련도 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사육사들의 태도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육사들은 머리에 흰 페인트칠이 된 50마리의 들쥐들은 다른 들쥐들보다 좀 더 영리하거나 특별하리라고 자기들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었고, 그런 마음의 판단이 이 50마리를 사육할 때 다른 것들보다 좀 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사육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목회편지이미지.png


이와같이 하찮은 들쥐들이라 할지라도 사랑과 정성으로 사육하면 성장과 발육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성도는 무엇보다도 서로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무관심속에 신음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속에 상처받고 울고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이기심의 울타리를 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이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당시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 대하여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치유하셨고, 감싸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상처받고 신음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서 부단히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버클리시온장로교회 담임>

목회자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