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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6시간, 남쪽으로 2시간 떨어진 샌디에고 그리고 미국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들어가면, 이곳으로부터 다시 멕시코 1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엔세나다 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부터 1차선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 한 2시간 이상을 달리면 까말루(Camalu)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합니다.
이 지역의 첫 인상은 사진으로만 보던 60년대 한국 풍경을 생각나게 합니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마침내 도착한 곳은 보라색 페인트로 외벽을 장식한 교회,
이곳에서 엄승호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까말루에는 이런 다양한 색을 갖고 있는 교회가 7개나 됩니다.
처음 교회는 하얀색, 두 번째 교회는 파란색 이처럼 원색을 사용한 것은 눈에 잘 띄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선교사의 안내로 원주민 인디오들이 모여 사는 깜포(campo)에 가게 되었습니다.
캄포는 농장 주인이 지어놓은 집단숙소입니다.
전기 없고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농장에서 토마토, 딸기, 호박을 따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커다란 바구니에 담으면 25센트를 받는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해야 이들이 버는 돈은 100pesos (미화 약 8불)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선교단원의 사역은 낮에는 집과 간단한 침대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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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틈나는 대로 노방전도를 하는 분들도 있었고 오후에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찬양과 영화 상영을 하였는데 느낀 점은 매우 기독교에 우호적이란 것입니다.
실지로 주일이면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사실 미국의 인디안 처럼 이 땅의 주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침략으로 인하여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학살을 피해 산으로 도망갔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집단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이주한 백인, 그리고 그들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계층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가톨릭입니다.
결국 가톨릭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개신교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기억되는 모습은 까말루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입니다.
필자의 교회가 인디오 가족을 위해 집을 한 채 지어주었는데 기뻐할 줄도 웃을 줄도 모르는 가족들의 눈빛이 기억납니다.
또한 긴 머리를 한 여자아이입니다.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인데 대부분의 인디오 아이들처럼 머리는 자르지 않아 길고 빗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헝클어진 머리였습니다.
함께 간 분이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피하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며 권하자 깎는다고 앉기는 하였지만 가위를 보자 눈물 흘리며 싫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의 눈빛이 기억납니다.
또 다른 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한 인디오 남자 분께서 아무 말 없이 고추를 밭에서 따 가지고 우리 일행에게 주시던 그 눈빛, 까말루에서 만난 눈빛은 감사할 줄도 힘들다고 외치지도 못하지만 풍부한 도회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분명 다른 눈 빛 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현재 멕시코의 인디오들은 약 2천5백만 명, 전체 멕시코 인구인 1억 2천만 명의 20% 가량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정부의 관심 밖에 있어서 교육, 의료, 복지 등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야 한다며 열심히 말씀하시던 엄승호 선교사의 눈물어린 눈빛이 산호세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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