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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케이 미술관에 가 보면 프레드릭왓츠가 그린 소망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약해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이 수건에 싸매어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녀의 손에는 비파가 하나 들려 있습니다.


그 비파의 줄은 본래 일곱 줄이었으나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캄캄해서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녀는 한 줄의 비파를 계속 탑니다.


그 줄은 하나님께 둔 소망의 줄입니다.


인간이 믿던 모든 줄이 끊어진다 해도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다 죽었는데 그들이 원래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본향을 소망하였다고 말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해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소망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는다는 것은 어떠한 생활을 말하는가?


사실 믿음이란 말은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만큼 믿음은 성도의 생활에서 기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을 더듬어 봄으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봅시다.


첫째 믿음은 부름에 대한 순종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아브라함만큼 부름에 순종한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은 묵상이나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생각 위에 탑을 쌓아 하늘에까지 닿게 해보려는 마치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자는 인간의 노력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어떤 인간의 생각과 노력의 결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인 것입니다
부름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한 것같이 부름은 하나님의 계시요 순종은 아브라함의 이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사건의 주인공이신 하나님과 응답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의 맛남에서 믿음은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남이 갖다 주는 것도 아니요 거저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나와 하나님과 맛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데 대한 나의 대답에서 믿음은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예라고 순종할 때 나는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은 신뢰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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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합니다.


물론 아무 예산도 없이 무턱대고 나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탑을 쌓는 사람이 예산 없이 시작했다가 중도에서 그만두면 웃음거리가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뢰하고 나아가는 것은 무턱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물론 나는 힘이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러한 믿음 위에서 나아가는 것이라면 결코 그것은 무모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친구가 나를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너무 계산이 치밀한 사람이라 그 음식에 혹시 병균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건강을 위하여 확실한 조치를 취하고 먹어야 하기에 의사의 검사 보증서가 붙어있어야만 나는 초대에 응하겠다고 친구에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친구를 사귈 수 없습니다.


결혼하는데도 평생 몇 해를 같이 살 것인지 재산을 얼마까지 모으며 자녀는 몇을 둘 것인지 등 여러 가지를 확실히 알아야 하고 보증이 있어야 결혼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친구를 믿고 아니 나와 결혼할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런 것은 따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사랑과 믿음이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것은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고 덮어놓고 무모하게 망동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로 믿음은 영원에 통합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한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믿음은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나타난 것은 현재는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의 모험이었으나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 것을 확실히 보고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성이 있음을 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 세상이 아무리 재미있고 아름다우며 살기 좋더라도 그것은 하늘나라의 완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 세상의 나그네로 장막에 우거하는 태도로 살 것이지 여기서 영원토록 살 것같이 세상의 것만을 위하여 그것을 추구하며 그것만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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