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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어느 분이 목사님 하나님은 전능하신분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사탄에게 넘어갈 것을 알면서도 그냥 두었기에 넘어갔는데 야단을 치시며 고통을 주십니까?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알면서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 인간이 잘못했다고 하십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책임이 더 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며 어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캐나다 동쪽 토론토에 유명한 수족관이 있습니다.
이것을 처음 만들 때 뱅쿠버 태평양 연안에 있는 희귀한 물고기들을 전부 잡아다가 물통에 넣어 가지고 물도 온도도 태평양과 똑같이 조절해서 차에 싣고 두 주일 후에 토론토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물통을 열고 보니 물고기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다 똑같은 태평양 물이며 온도도 똑같이 해서 가지고 왔는데 죽다니 하면서 일 년간 연구를 해서 다시 태평양의 물고기를 잡아 이번에는 방법을 좀 달리 하였습니다.
문어새끼 같은 발과 손이 많은 것을 한 마리씩 잡아서 물통에다 집어넣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데다 이상한 괴물이 들어와서 돌아다니는데 물고기들이 죽을 지경입니다.
편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잡아먹을 것처럼 쫓아다니니 잠을 잘 수도 한 곳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니까 물살을 이루면서 이렇게 두 주일을 가다 보니까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에는 물고기들이 비록 지쳐있기는 했지만 한 마리도 죽지 않았고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에는 물살이 셉니다. 그 물살을 이기려고 투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니 항상 긴장하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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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첫 번째 물고기들은 잡으려고 하는 원수도 없지 물살도 없지 너무 편하니까 운동부족으로 두 주일 동안에 다 죽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물고기들은 귀찮게 구는 문어 때문에 아니 문어를 왜 여기에 두었느냐? 왜 우리를 못살게 구는가. 수족관을 만들어 구경하려고 하면 우리를 좀 편하게 모시고 가야지 하면서 불평했지만 사실은 그것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 땅에 사탄을 두시는지 이제 좀 이해하실 것 같습니까? 물론 이것은 완전한 설명은 되지 못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도 낙오자 없이 천국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니 그냥 데려가면 안 되는가? 안 됩니다 천국에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 자격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훈련을 통해서 합격한 자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탄은 주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항상 고난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고난이 있음으로 더욱 강해지고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또 성경은 말하기를 성도의 고난은 훈련일 뿐만 아니라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빌1:12)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현재 당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 관대 진보가 된다고 합니까? 그것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감옥에 갇혀 있는 일이 어떻게 복음전도에 진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음으로 하루에 네 번씩 교대로 오는 군인들에게 전도해서 그들을 통하여 복음이 로마 왕족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동안에는 모든 것을 바울이 하겠지 하고 팔짱을 끼고 있던 성도들이 이제는 자기들이 스스로 나서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바울을 감옥에 가두면 복음 전파에 지장을 줄줄 기대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을 주었으니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당하는 일이 복음에 진보가 되느니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바울이 감옥에 있었음으로 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신약성경 가운데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디모데서와 같은 귀중한 옥중서신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까? 항상 바울이 바빴더라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바울을 감옥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산속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1:6,7)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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