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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피스토스 기독대학 학장>

 

타락한 인류를 향한 홍수의 대 심판은 노아의 방주를 창일한 물위를 이리 저리 떠다니며 방황하게 하였으나 노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방주를 아라랏 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제 방주 속에 있는 노아는 비로소 창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알기 위해 까마귀를 내어 보냅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기 바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내고 기다립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다 인생은 어디를 행해 가고 있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 전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이 전차의 방향을 알기 위해 묻습니다. 어디 가니 그때 우리는 짓궂게 집에 가요 하면서 킬킬 웃었습니다.
집에 가요 그 집이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분명히 집으로 가고 있습니까? 영국의 어떤 학자가 강연을 부탁 받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길이 무너진 곳이 있어서 그 길을 치우고 가느라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진 그는 마부를 재촉했습니다. 빨리 더 빨리 시간 늦겠어. 더 빨리 마부는 사정없이 말에 채찍질을 가합니다.
말은 이제 미친 듯이 달립니다. 한참 달리다 이 학자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밖을 내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자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는 모릅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빨리 달리라고 하여 달릴 뿐입니다.
마부는 헐떡이며 더욱 채찍질을 합니다. 인생은 마치 이 마부와 같이 엉뚱한 곳을 향해 채찍질을 하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둘기를 내어보낸 노아는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비둘기를 기다립니다. 그때 비둘기는 온 지면에 물이 넘쳐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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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쉴 곳을 찾는데 지쳤습니다. 방주를 떠나서 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비둘기가 쉴 곳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비둘기는 자기의 유일한 안식처인 방주로 돌아옵니다. 얼마나 힘겹게 비둘기는 날고 날았겠습니까? 비둘기는 이제라도 떨어질 것만 같아 방주까지 갈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방주로 돌아옵니다. 비둘기를 내어보낸 노아는 기다렸습니다.
전쟁터에 자식을 내어보낸 어머니는 그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법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노아는 온종일 비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겨우 방주 한 끝에 이르렀으나 힘이 지쳐서 떨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노아가 손을 내밀어 자기에게로 비둘기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방주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 유일한 안식처로 구원의 반석이었습니다. 그 방주로 비둘기를 그것도 손을 내밀어 받아준 것입니다.
비둘기는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피곤에 지쳐있었습니다. 비둘기는 날만큼 날았습니다. 그럴 때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자기에게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친 비둘기에 대한 긍휼의 은혜입니다.
비둘기가 이렇게 지칠 때까지 방황한 것에 대한 아무런 추궁이나 꾸중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아온 그 모습 그대로 방주 속에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는 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니다. 그저 돌아오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것 외에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그저 돌아오라 비둘기는 헤매던 몸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노아는 그 비둘기를 방주 속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방황하는 자여 기운을 잃은 자들이여 죄로 인해 까마귀처럼 검다고 탄식하지 말고 돌아오라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라 여러분이 주저하면 주저하느니 만치 불행은 더합니다.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 자태로 예수께로 오라 집으로 가요 그 집은 예수님의 품안에 있습니다.
 이 땅위에서 교회가 방주입니다.
지친 자를 맞이하고 쉴곳을 마련해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쳐있습니다. 방황하다 찾아왔습니다. 패역한 채 죄된 몸으로 말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우리를 주님께서 맞이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지쳐있기에 위로하며 싸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 지쳐있습니다.
미주에 와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아침부터 직장으로 사업장으로 달려가며 살기에 힘에 지쳐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지쳐있는 우리들을 돌보아 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서로 싸매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상처를 더 들어내고 소금을 뿌리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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