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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 말씀은 어찌 보면 모순된 말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받기보다 주기를 좋아할까요?
그런데 주님은 분명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으니 참으로 그 말이 맞을 것이요 또 그 말 속에는 어떤 뜻이 있을 줄로 압니다.
우리는 모두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간단합니다.
주는 자가 되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순이요 주님은 우리 인생을 모르고 하신 말씀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많이 받을 때 우리는 행복이라고 하지 주기만 하면 손해라고 하며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지 않고 고통과 괴로움과 재산의 몰락들을 당하면 하나님이 있기는 무얼 있어 사랑이라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럴 수 있는가 하고 항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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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책에 있는 이솝이야기 중에 어떤 욕심 많은 개가 고기를 물고 다리를 건너다가 물속에 있는 개가 있는데 자기보다 더 큰 고기를 물고 있기에 그걸 빼앗으려고 멍멍 짓다가 물고 있던 고기까지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동물들도 그저 빼앗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줄 줄을 압니다. 만약 인간이 줄 줄을 모르고 서로 받기만 원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참으로 끔찍할 것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 살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주지 않고 받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어떻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서로 주기만을 한다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꾸 주니까 자연히 나도 풍족해질 것이 아닙니까? 물론 이것은 유치한 이론입니다만 하여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는 생활을 통하여 행복을 발견합니다.

주는 것이 복된 것은 벌써 주는 행위 자체가 다시 말해서 그 마음이 아름다우며 그의 품위가 즉 인품이 그의 행동으로 나타남으로써 결국 좋은 인상과 더 나아가서는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축복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나에게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한량없이 받아야 남에게 줄 수 있을 터이니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드리고 예배를 진정으로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나의 마음과 정성 그리고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족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는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외우는 성경 구절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아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먼저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것은 무엇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주기 위해 왔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함이라고(마20:28)합니다.
준다는 것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하나님을 위해 살며 그를 기쁘게 하는 생활을 나의 유일한 철학으로 삼으며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에게 나의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바쳐 찬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참된 예배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들에게 넘치게 쏟아 부어 주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하신 주님의 응답입니다.
한 여인이 옥합을 깨어서 주님께 바칠 때 제자들은 어찌하여 허비하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분명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허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이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복음이 전하는 곳에 이 여인이 한 일도 같이 전파되어 기념하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말이 아닐까요? 주님께 바치는 것이 교회위해 헌신하며 힘쓰는 것이 참으로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허비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잘하였다고 하실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이 뿌린 향수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했던 것같이 우리가 줄 때 나의 정성을 쏟을 때 우리 교회 안에 아니 온 세상에 그 향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요 그때 잘했다고 칭찬하실 뿐만 아니라 네가 적은 것에 충성했음에 많은 것으로 받아라하는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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