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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오늘도 우리는 숨을 쉬고 있으니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없는 죽음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 앞에는 분명히 두 길이 나타날 것인데 한길은 천국의 길이요 다른 한길은 지옥의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길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면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편에는 보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단은 오늘도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를 따라오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유명한 부흥 전도사 로랜드 힐 목사가 거리를 지나가는데 여러 마리의 돼지가 어떤 사람을 졸졸 뒤따라가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힐 목사는 그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돼지들은 아무 반항도 없이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도살장으로 따라 들어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신기해서 그는 돼지 주인에게 형제여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돼지를 능수능란하게 인도해 오셨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게는 비결이 있지요 보시다시피 난 완두콩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계속 몇 알씩 흘려주었지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고 힐 목사는 말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로 말미암아 귀신이 떠난 사람과 거라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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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떠난 이 사람은 즉시 완벽한 인격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말은 귀신은 물러갔지만 다른 사람보다 학식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거기 있는 다른 거라사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귀신에게서 해방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뿐입니다.
그런데 거라사인들은 예수를 거기서 떠나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이 소원 이 마음이 거라사인과 귀신들렸던 사람을 나눈 기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이라고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며 애쓰며 분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간혹 실패도 하고 때로는 용기를 잃게 되고 거의 낭패 지경에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나 천성문을 향해 분투를 계속할 뿐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인 것입니다.
어떠한 신분인가 잘 사는가 못 사는가 죄가 얼마나 있는가? 적은가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믿는 자나 어쩌면 그렇게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마음의 상태 소원과 목표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또는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떻게 어떤 위치에 사는가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쫓아 버리고 싶은가 그렇지 않으면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우리가 있는 것이 확실하듯이 우리 마음에 이쪽인가 저쪽인가를 확실히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실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이에 따라서 결정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이 시간에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두세 사람이 모여도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이 자리에 분명히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교회에 오랜 동안 다니면서도 여기 거라사인들처럼 예수님을 쫓아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일이면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성경을 들고 다니고 있지만 어쩐지 마음에 기쁨이 없고 변화가 없는 것은 주님을 쫓아버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나의 믿음을 점검하면서 과연 나는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나는 주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없는 존재임을 명심하면서 언제나 주님이 나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바랄 때 주님은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웃 속에 나가서 주님을 증거 하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성도여 주님의 재림은 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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