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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피스토스 기독대학 학장>

 

오늘부터 부활절 전까지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가상칠언을 살펴보려합니다 스탠톤(Edwin Stanton)은 아브라함 링컨의 적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링컨에 대하여 아주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링컨에게 이런 말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수염과 털이 많은 고릴라 대통령을 세울 바에야 아프리카에 가서 한 마리를 데려 오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아프리카로 고릴라를 보러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거기에 좋은 고릴라가 한 마리 있으니 거기 가서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링컨은 이렇게 심한 비난과 모욕을 퍼부은 스탠톤이지만 그가 유능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를 휘하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정말 도량이 넓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다운 처사였습니다.
링컨이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일찍이 그의 인격에 감복한 스탠톤은 링컨의 조용한 얼굴을 보며 다음과 같이 눈물로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 누어있는 이분은 인류가 소유할 수 있었던 최고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성도여 당신은 얼마만큼까지 잘못한 사람을 용서 할 수 있습니까? 그날 골고다 언덕 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두 개의 십자가가 더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행악자의 두목처럼 가운데 십자가에 달려 사향집행을 당했습니다. 죄 없는 분을 이렇게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니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십니까?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고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며 예수를 알지 못하노라고 부인했습니다.
군병들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고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은 비웃고 있습니다.
군병들은 또한 희롱하며 신 포도주를 주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어든 너를 구원하라고 조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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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말들 조롱이 가득 담긴 신랄한 욕설 증오에 찬 모욕스런 표현들 지금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일까요?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저렇게 분노하게 하였을까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기에 죽어 가는 사람을 조롱한다는 말입니까? 누가 찢어 발겨진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릴 만큼 잔인하단 말입니까? 비록 죄를 지어 사형 선고를 받아 전기 충격 의자에 앉아 있는 죄인을 혹은 이미 그의 목에 사형 집행인의 올가미가 드리워져 있는 사형수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수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는 사람에게 조소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비열하고 사악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가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말이 그에 입에서 나올지 궁금합니다.
성경은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라고합니다. 이 말은 이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라는 뜻이 아닙니까? 이때가 어떤 순간입니까? 그때는 인간이 그의 죄악의 일을 저지르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인간의 사악함이 그 절정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는 저들이 그 사악한 손으로 감히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순간 저들을 향해 무서운 저주를 퍼부으실 만도 합니다.
주님은 이 순간 땅으로 그 입을 벌려 저들을 산채로 삼키도록 하실 만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 왜 주님은 오히려 아버지께 부탁합니다. 아니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어디 두고 봐라 내가 복수할 테니 이봐라 내가 부활할 때까지만 기다려 이렇게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들입니다.
그는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더 간단히 얘기하자면 심판은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보복할 길을 찾지 아니하셨고 사과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청부업자나 혹은 민병대를 보내지도 않으셨고 놀랍게도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을 변호하셨습니다.
도무지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합니다. 잘못 들었나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히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십자가에서 하신 그 유명한 가상칠언의 첫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보십니까? 이 기도는 사람들이 주님을 환호하며 높이는 곳에서 메시야로 정당한 대접을 받는 곳에서 드린 기도가 아닙니다.
그 기도는 극악한 죄인으로 사형수 취급을 당하며 철저한 냉대와 비웃음으로 버림을 받는 곳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달라는 용서의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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